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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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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하사가 소리쳤다. “바나나 나무를 적이라고 상상해라. 너희 부모님을 죽이고 너희 가족을 죽이고 너희에게 온갖 불행을 가져다준 반군 놈들이라고 생각해.” 그가 뒤이어 물었다. “너희는 가족을 죽인 원수 놈을 고작 그따위로 찌를 거냐?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하사가 총검을 꺼내 기합을 넣으면서 바나나 나무를 찌르기 시작했다. “우선 배, 그 다음 목, 그 다음 심장을 찌른다. 심장은 도려내서 그놈들이 직접 보게 한다. 그러고 나서 눈알을 뽑아버리는 거지. 기억해라. 녀석들은 너희 부모님을 훨씬 더 잔인하게 죽였을 거야. 자, 다시 시작.”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부제가 ‘어느 소년병의 기억’이다. 12살에 터진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13살에 처음 살인하고, 마약에 찌든 채 무수하게 사람을 죽였던 소년은 유니세프에 구출돼 이 책을 쓰고, 이후 인권운동가가 됐다. 10년간 시에라리온 내전은 소년들에게 반군 아니면 정부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저자는 “첫 살인 이후로 내 마음은 철컥 문을 닫았으며…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마시는 것만큼 쉬웠다”고 썼다. “어른들은 이 전쟁이 국민을 부패한 정부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혁명전쟁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해방운동이 무고한 시민들과 아이들과 그 어린 여자 아기마저 총으로 쏜다는 말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인 기계’로 살던 소년을 구해낸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지구촌, 소년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참혹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