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행기 안타고…기내식 카페 열고 타로 봐주는 男승무원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1층에 위치한 제주공항 여행맛 카페 3호점. 이병준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1층에 위치한 제주공항 여행맛 카페 3호점. 이병준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강서구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1층 매장 안쪽으로 들어오니 우선 커다란 여객기 모형이 눈에 띄었다. 그 옆에 놓인 주황색 아치형 입구로 들어가니 주황색 스카프나 넥타이를 맨 제주항공 승무원들이 손님을 맞았다. 오픈 직후였지만 테이블 대부분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손님 대다수는 승무원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한 대학생들이었다.

[잡썰29] 제주항공 객실본부 최병찬 객실기획팀장

‘여행의 행복을 맛보다’(여행맛)는 제주항공 현직 승무원들이 직접 꾸리고 운영하는 ‘기내식 카페’다. 커피, 차 같은 음료는 물론이고 기내식과 수면 안대, 슬리퍼 등 기내 어메니티(생활 편의용품) 등도 판매한다. 음식을 주문하면 기내에서 하듯 반조리나 완조리 상태의 제품을 전자레인지나 오븐으로 데운 뒤, 승무원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는 식이다.

여행맛 카페서 커피 등 음료와 디저트류, 기내식, 모형 여객기 등 굿즈가 판매되고 있다. 이병준 기자

여행맛 카페서 커피 등 음료와 디저트류, 기내식, 모형 여객기 등 굿즈가 판매되고 있다. 이병준 기자

제주항공은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AK&홍대에 여행맛 카페 1호점을 냈다. 3개월간만 운영할 생각이었지만 1호점이 인기를 끌자 8월 경기 성남시 AK플라자 분당점에 2호점을,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에 3호점을 열었다. 1호점은 지난 7월 영업을 끝냈다. 현재 2호점에는 현직 승무원 10명이, 3호점에는 14명이 근무한다.

‘승무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는 제주항공 객실본부 최병찬(40) 객실기획팀장의 작품이다. 그는 “여행은 항공기를 타면서 시작된다. 기내 서비스를 받거나 기내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행길이 막힌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지상에서 똑같이 체험할 수 있으면 손님들이 즐거워하고 ‘힐링’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기내식은 실제 제주항공 국제선에서 제공되는 인기 기내식 메뉴다. 또 평소 승무원이 먹는 기내식도 메뉴에 추가했다. 손님의 타로 운세를 봐주는 등 기존 기내 서비스 역시 카페에 도입했다.

제주항공 객실본부 최병찬 객실기획팀장. [사진 제주항공]

제주항공 객실본부 최병찬 객실기획팀장. [사진 제주항공]

특히 여행맛 카페 3호점은 매장 내에 승무원 체험 교육 공간을 마련했다. 실제 승무원 옷을 입어보거나 현직 승무원과 함께 승무원 업무를 체험해볼 수 있게 했다. 최 팀장은 “체험 행사에는 현직 승무원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있어서 승무원 지망생이나 학생, 어린이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을 비롯한 객실기획팀은 여행맛 카페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카페 출입구를 ‘32번 탑승구’로 꾸미고(32번은 제주항공이 인천공항에서 처음으로 정기편을 취항할 때 썼던 탑승구 번호다), 기내식 카트를 테이블로 쓰거나 컵 감싸개를 여행 티켓처럼 만든 것도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됐다. 최 팀장은 “처음에는 ‘모든 카페 좌석을 실제 항공기 의자로 놓자’는 제안도 나왔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실현되진 않았다”고 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은 1호점 오픈 당시에는 추천을 받아서 선발했다. 최 팀장은 “처음엔 여행맛 카페 컨셉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추천을 받아 인원을 구성했다”며 “직접 한 분 한 분 전화드려서 ‘같이 일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다”고 설명했다. 2호점과 3호점에서 일할 직원은 사내 게시판에서 공모했다. 20여명을 모집하는데 자원한 승무원만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제주항공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모두락’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에게 5일에 걸친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받고 카페에 투입됐다.

"승무원 문화 많이 바뀌어…'쪽머리' 필수 아냐"

제주항공 여행맛 카페 3호점에서 승무원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주항공]

제주항공 여행맛 카페 3호점에서 승무원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주항공]

최 팀장은 16년 차 승무원으로, 제주항공 공채 1기 중 유일한 남승무원이다. 그는 “입사 초반에만 해도 승객들 앞에서 기내안전 브리핑을 하면 손님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보시고 사진을 찍으시기도 했다”며 “당시만 해도 남자가 승무원이 될 길이 별로 없었는데, 운이 좋게 제주항공이 만들어지면서 기회를 얻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입사 이래 객실승원팀장, 객실승무파트장, 기내판매파트장 등으로 일해왔다. 현재는 여행맛 카페의 기획 및 운영 담당자이자 승무원 체험 교육 프로그램 ‘에듀플라잇’ 운영 총괄을 맡고 있다. 최 팀장은 “객실 승무원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면접을 본다고 하면 (여승무원의 경우) 무조건 ‘쪽머리’에 흰색 반팔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 치마를 입어야 하고, 키와 나이 제한이 있었다"며 "요즘에는 자유복에 안경을 착용할 수도 있고, 헤어스타일이나 네일아트 등 제한도 풀어졌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MZ세대’ 직원들이 계속 들어오는 만큼, 젊은 층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회사 문화를 계속 바꿔나갈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