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포장' 상 받은 이 남자, 이번엔 스팸 4000만개 벗겼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1 07:00

업데이트 2021.09.11 07:02

‘뚜껑 벗기는 남자.’

올해 추석에만 선물용 스팸(SPAM)의 뚜껑을 4000만개가량 벗겨내는 남자가 있다. CJ제일제당 이병국(44) 패키징(Packagingㆍ포장)센터 팀장이 주인공이다. 지난 8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CJ블로썸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CJ블로썸파크는 CJ제일제당의 연구개발(R&D) 핵심부다.

[잡썰26]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

이 팀장은 CJ제일제당이 만드는 모든 포장에 관여한다. 국이나 찌개류가 들어가는 파우치부터, 스팸이 담기는 금속재 캔 포장, 설ㆍ추석 등 명절 선물 포장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포장은 없다. CJ제일제당이 만드는 6300여 가지 포장 개발을 총괄한다. 그가 몸담은 패키징센터에는 30여명의 연구진이 더 나은 제품 포장을 위해 고심 중이다.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이 회사 제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CJ제일제당에서 만드는 6300여 가지 포장 개발을 총괄한다. [사진 CJ제일제당]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이 회사 제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CJ제일제당에서 만드는 6300여 가지 포장 개발을 총괄한다. [사진 CJ제일제당]

포장과의 인연은 2003년 사회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시작됐다. '주연'이 아닌 '조연'처럼 여겨지지만, 포장에는 다양한 노하우와 기술이 적용된다. 그는 "신제품의 컨셉을 잡는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어떤 식으로 포장이 돼야 할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김치 포장으로 칸 영화제급 권위 상(償) 받아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올 추석 선물용 스팸포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CJ제일제당]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올 추석 선물용 스팸포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CJ제일제당]

소매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김치 포장 용기에도 여러 고민이 녹아있다. 우선 김치가 포장 속에서 익으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잘 배출하면서, 외부의 산소는 포장 안에 스며들어선 안 된다. 김치가 포장 속에서 익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효모 발생도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에 김치의 재료가 되는 배추는 수확시기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다.

이런 고민을 모두 담아낸 '비비고 김치 포장(단지형 용기)'을 개발하는 데에는 3년 가까운 시간이 들었다. 덕분에 비비고 김치 포장은 2017년 국제 패키징 어워즈인 ‘듀폰 포장 혁신상(DuPont Packaging Innovation Award)’ 금상을 받았다. 영화로 치면 ‘칸 영화제’에 버금갈 만큼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이 팀장은 “발효식품을 제어하는 기술로 듀폰 포장 혁신상을 받은 건 비비고 김치가 최초”라고 했다.

포장은 어찌 보면, 여러 소재를 한 가지로 잘 묶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CJ제일제당의 즉석밥인 햇반에는 총 4겹의 얇은 껍질이 입혀진다. 3중, 20각 형태로 구성된 햇반 용기는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가 바닥까지 전달되도록 고안됐다. 조리 시간도 줄이고, 수분 손실까지 막도록 고안됐다. 덕분에 방부제를 넣지 않고도 9개월 동안 고슬고슬한 밥맛을 즐길 수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서로 다른 성격의 소재들을 잘 활용해 만든 포장의 힘”이라고 했다.

10여 가지 테스트 거쳐 식료품 포장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전자레인지로 즉석밥인 햇반을 조리하면서 열 전달 정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햇반 용기는 3중, 20각 형태로 구성돼 열이 골고루 전달되고, 수분 손실까지 막도록 고안됐다. [사진 CJ제일제당]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팀장이 전자레인지로 즉석밥인 햇반을 조리하면서 열 전달 정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햇반 용기는 3중, 20각 형태로 구성돼 열이 골고루 전달되고, 수분 손실까지 막도록 고안됐다. [사진 CJ제일제당]

포장은 복잡한 테스트도 통과해야 한다. 완성차처럼 낙하실험과 내압실험, 충격 강도 실험 등 10여 가지 테스트를 거친다. 명절 선물용 포장에 들어가는 종이 쇼핑백도 어느 무게, 얼마만큼의 충격을 버틸 수 있는지까지 다 테스트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복잡다단한 기술을 입히는 만큼 최근 10여년 동안 등록한 포장 관련 특허만 30개에 이른다.

포장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다 보니 버릇도 생겼다. 대형마트에 가면 신제품은 반드시 산다.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질감인지 일일이 만져보고 살펴보기 위해서다. 빈 종이박스 등에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 식료품을 담아보는 건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어떻게 상자에 넣어야 최대한 많은 제품을 파손 없이 담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팀장은 “그래서 가족과 대형마트에 같이 가도 혼자서 장바구니를 채워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많다”며 웃었다.

스팸 뚜껑 없래 플라스틱 236t 줄여  

최근 고민은 친환경이다. 이 팀장은 “한 마디로 최소의 포장재료를 사용해 최대한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했다. 친환경 포장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에 성과도 내고 있다. 우선 햇반 용기 구조를 일부 바꿔 내구성은 높이면서 내부 빈 공간은 최소화 했다. 덕분에 플라스틱 사용량 40%(연 340t)를 줄였다. 호떡믹스, 브라우니믹스 같은 간식용 프리믹스 제품의 박스 규격도 최적화한 덕에 부피가 각각 30%, 25% 작아졌다.

[자료: CJ제일제당]

[자료: CJ제일제당]

올해 추석에는 선물세트용 스팸의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을 없앴다. 개수로는 4000만개, 무게로는 236t 분량이다. 뚜껑을 벗겨내도 제품이 유통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금속용기 등의 포장기술이 개선된 덕이다.

그에겐 꿈이 있다. 캡슐커피처럼, 새로운 포장 기술을 내놓아 시장 자체를 선도하는 일이다. 캡슐커피의 등장 덕에 카페에서나 마실 수 있는 프리미엄급 커피도 버튼 한 번만 누르면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됐다.

"포장은 제품을 빛나게 돕는 조연이다. 하지만 캡슐커피는 포장 기술 하나로 커피 시장 자체를 바꿨다. 그런 획기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이 팀장은 오늘도 ‘빛나는 조연’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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