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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탄소중립 의지 없다" 종교위원들 사퇴…탄중위 파열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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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석 신부(백종연 신부 대신 참석), 법만 스님, 안홍택 목사, 김선명 교무(왼쪽부터)가 30일 서울 종로구 탄소중립위원회 앞에서 열린 탄중위 종교위원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퇴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기석 신부(백종연 신부 대신 참석), 법만 스님, 안홍택 목사, 김선명 교무(왼쪽부터)가 30일 서울 종로구 탄소중립위원회 앞에서 열린 탄중위 종교위원 사퇴 기자회견에서 사퇴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에 참여하던 4대 종단 위원들이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가 없다면서 사퇴를 선언했다. 환경 단체들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한 자체 요구안을 제시했다. 시민사회가 독자적인 '탈(脫)탄소' 목소리를 높이면서 각계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탄중위 내 파열음도 커지게 됐다.

탄중위 국민참여분과 민간위원인 김선명 교무(원불교), 백종연 신부(가톨릭), 법만 스님(불교), 안홍택 목사(개신교) 등 4명은 30일 위원직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탄중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종교 위원들(백 신부 대신 양기석 신부 참석)은 더 이상의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뜻을 밝혔다.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했음에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2030 NDC는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 수준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이들은 사퇴문을 통해 "더 과감하게 상향된 2030 NDC 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 것을 간곡히 촉구했지만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정부는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종교 위원들은 내부 논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최소 감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안만 준비했고, 탄중위에 임하는 자세도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김선명 교무는 "법 제정할 때 35% 이상이라고 명기하니 정부 초안도 거기에 딱 맞춰서 갖고 왔다"면서 "오히려 워크숍에 나온 정부 쪽 실무자들은 40% 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면서 심의 위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못 하겠다, 안을 우리에게 달라'고 하는 건 정부가 내놓을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관련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쓴 수녀가 30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종교위원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기후위기 관련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쓴 수녀가 30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종교위원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탄중위 민간위원의 사퇴가 처음은 아니다. 오연재 기후활동가가 8월 말 제일 먼저 국제협력분과 민간위원을 그만둔 바 있다. 9월에는 녹색생활분과의 박진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도 사퇴했다. 하지만 종교계가 다 함께 논의의 장에서 빠져나간 건 충격파가 더 크다. 탄중위 관계자는 "종교 위원들의 사퇴 의사가 29일 전해진 뒤 위원회 내부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2030 NDC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탄중위를 압박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날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NDC 설정에 대한 자체 요구안을 발표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과 비교해 최소 50% 이상 줄여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의 권고 수준인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감축, 2010~2018년 배출량이 늘어난 국내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넘어 '배출 제로'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28일 탄소중립위원회와 기업 간의 간담회가 예정된 서울 대한상의 회의실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산업계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시위로 이날 간담회는 취소됐다. 연합뉴스

28일 탄소중립위원회와 기업 간의 간담회가 예정된 서울 대한상의 회의실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산업계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시위로 이날 간담회는 취소됐다. 연합뉴스

시민사회의 독자 행동이 가시화되면서 산업계와의 의견 충돌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로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탄중위와 경제단체ㆍ기업 간의 간담회는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의 현장 시위로 무산됐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종교위원 기자회견에 참여한 민정희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은 "산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탄중위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중장기 과제인 2050 탄소중립은 불가피한 목표라 하더라도 단기 과제인 2030 NDC는 산업 경쟁력과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므로 기업ㆍ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탄소중립 방향을 잡아야 할 탄중위의 앞길도 순탄치 않게 됐다. 탄중위는 10월까지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할 예정이다. 하지만 연이은 민간위원 사퇴 등으로 향후 논의가 삐걱거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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