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박영훈 "7연패 내게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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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성화재배 7연패가 박영훈4단의 두 어깨에 걸렸다. 이창호9단도 없고 이세돌9단도 없다. 조훈현9단과 유창혁9단도 없다. 한국의 4천왕이 모두 탈락하고 박영훈만 남았다. 1985년생으로 올해 만18세. 프로경력은 불과 4년이고 지금까지 우승 경험은 국내대회인 천원전 한번뿐이다.

과연 박영훈은 빛나는 선배들의 뒤를 이어 우승행진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박영훈은 "한번 해보겠다"고 말한다. 삼성화재배는 1회 대회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에게 우승을 내준 이래 6년 연속 한국이 우승을 차지해왔다. 이창호.조훈현.유창혁이 바로 우승의 주인공이었다.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준결승전이 11월 4~7일 대구 영남대에서 3번기로 펼쳐진다. 박영훈은 중국의 셰허(謝赫.19)5단과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인다. 셰허는 바로 8강전에서 이창호9단을 반집차로 격파한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또 다른 준결승전 대국은 조치훈9단과 중국의 후야오위(胡耀宇.21)7단의 대결.

*** 중국의 두 영웅, 후야오위와 셰허

8강전이 끝났을 때 중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셰허와 후야오위가 세계 바둑의 쌍두마차라 할 이창호-이세돌을 꺾고 4강에 오르자 중국 매스컴과 인터넷 사이트는 '북받쳐오르는 감동'의 물결을 이뤘다. "중국바둑계가 세계를 강타하는 일이 시작됐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의 한편에서 조심스러운 충고도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까지 다 잡아놓은 우승을 놓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88년의 잉창치(應昌期)배 때 녜웨이핑(衛平)9단이 조훈현9단에게 역전패한 것이 비운의 시작이었다. 98년 삼성화재배의 마샤오춘(馬曉春)9단도 이창호9단과의 결승전서 귀신이 씌운 듯 실수를 거듭한 끝에 2대3으로 역전패했다.

2001년 삼성화재배 때 조훈현9단에게 역전패한 창하오(常昊)9단의 케이스도 거의 비슷했다. 이들은 결승전 당시 모두 중국의 일인자였으나 그 잊을 수 없는 패배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들었고 재기의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엔 그 지긋지긋한 조훈현-이창호 사제는 물론 이세돌-유창혁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믿고 있다. 다만 악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말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 부활을 꿈꾸는 조치훈

조치훈9단은 세계대회와는 악연이다. 12년전 후지쓰배서 단 한번 우승했으나 결승전 상대가 기권해 빛이 바랬다. 이후 수많은 대회서 초반 탈락이 이어졌다. 장고파라서 3시간짜리 세계대회서는 안된다는 해석도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주최 측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막차로 합류했으나 신기하게도 4강 진출이란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8강전에서 지금껏 7전7패해온 조훈현9단을 공식 대국 사상 처음 꺾은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후야오위7단은 준결승에서 이세돌을 눌러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조치훈의 컨디션도 최상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치훈9단이 부활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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