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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언니들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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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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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 같은 동네 마주하고 있는 이웃. 이 모든 관계를 떨쳐내고 속된 말로 ‘계급장 떼고’ 붙었다. 춤꾼들의 춤꾼으로 불리는 여성 댄서들이 무더기로 나와 일합을 벌이는 엠넷(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얘기다.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이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팀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36)와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34)다. 두 사람 모두 실용무용을 가르치는 교수로 후학을 양성 중이다. 허니제이는 이 중에서도 우리나라 걸스힙합을 키운 댄서로 손에 꼽힌다.

경연 룰에 따라 최악의 댄서로 꼽힌 모니카가 자신과 배틀을 할 당사자로 허니제이를 꼽자 장내가 술렁였다. 고수 간의 경연. 긴장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때 카메라가 비춘 건, 일그러지긴커녕 웃음기가 돈 허니제이의 얼굴. 모자를 고쳐 쓴 그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적막감이 돌던 무대에 환호성이 일었다. 그 뒤의 명장면 이야기는 상상에 맡긴다.

중추가절(仲秋佳節) 마지막 연휴 날을 휩쓴 건 때아닌 ‘수박’이었다.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또 설전을 벌였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을 두고 이낙연 전 대표 측이 공세를 펼치자, 이재명 지사가 “공영개발을 포기하라고 압력한 우리 안의 수박 기득권자”를 언급하며 반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낙연 전 대표 측은 곧장 말을 물고 늘어졌다. 수박 표현은 “호남인을 모독하는 일베 용어”라고 발끈했다. 공격이 되돌아오자 이 지사 측이 다시 되받았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일 뿐, ‘겉과 속이 다른 예로 말한 것’인데 호남 비하로 연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사는 근거로 트위터에 무려 60여 년 전 한 신문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수박 의미 놓고 이상한 말씀 하시는 분들 보세요”란 설명도 달았다. 발췌된 기사엔 ‘관권 횡포를 막기 위하여 나는 ‘수박’ 선거(겉과 속이 다른 선거)를 하자고 절규했다’는 문장이 실려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호남 경선(오는 25~26일)을 앞둔 두 후보의 수박 난타전을 보고 있자니 미간이 찌푸려진다. 정상급 정치인답게 호남 민심 앞에, 멋진 한판 대결을 보여줄 수는 없나. “잘 봐! 형들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