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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핵잠수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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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셋, 둘, 하나, 마크. 1958년 8월 3일. 동부 일광 절약시 기준 23시 15분. 북극점 도착.”

세계 최초로 북극점을 통과한 잠수함은 미국 핵잠수함 노틸러스다. 항해를 이끈 윌리엄 앤더슨 함장은 북극점 도달 순간을 이렇게 적었다. 노틸러스는 세 차례 시도 끝에 북극점에 다다랐다. 자력을 이용하는 나침반은 북극점 근처에선 무용지물이라 탐사용 나침반도 따로 만들었다.

1954년 취역한 노틸러스의 선명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가져왔다. 전장 98m의 잠수함은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로 증기터빈을 돌려 움직인다. 항속은 23노트, 시속으로 따지면 43㎞ 정도다. 핵연료로 추진하는 핵잠수함은 항속거리가 무제한이다. 승조원용 식량 선적량이 작전반경을 결정한다.

핵잠수함은 현대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다. 핵폭탄은 1945년 일본 나가사키를 끝으로 반세기 넘게 실전에 쓰이지 않았다. 견제와 과시가 핵폭탄의 역할이다. 반면 핵잠수함은 지금 이 시각에도 바닷속 어딘가에서 작전 중이다. 디젤 잠수함과 달리 내연기관이 돌지 않기에 발견하기도 까다롭다.

최근 국제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바로 핵잠수함이다. 미국은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를 발족하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호주는 프랑스와 맺은 77조원 규모의 잠수함 도입 사업을 파기했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까지 나서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의 핵잠수함 기술 이전 논의는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프랑스를 제외한 채 잠수함이 잠행하듯 은밀한 대화가 오간 것이다. 미국-호주-영국으로 이어지는 핵잠수함 안보 동맹으로 태평양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안보축은 크게 뒤틀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국내서도 핵잠수함을 건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세계적인 원자로와 선박건조 기술을 가진 만큼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핵잠수함 건조 후가 더 큰 문제다. 오커스 발족으로 태평양에서 입지가 좁아질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원자력선을 운용한 경험이 있는 일본도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게 자명하다. 동북아 군비 경쟁이 불가피한 구도다. 태평양 안보의 축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지금 한국은 어느 지점으로 잠행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