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 걸즈, 가면부부, 프로 망언러...그가 日 첫 女총리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선언을 하는 다카이치.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선언을 하는 다카이치.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어에서 주인(主人)이라는 한자어의 뜻 중 하나는 ‘남편’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남편’이 ‘주인’인 이 이웃국가에서 첫 여성 총리 유력설이 나온다. 주인공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자민당 총무상이다. 한국엔 극우성향으로만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일본 정계 넘버원에 성큼 다가선 인물이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중앙일보에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실제 당권 파벌의 세력 대결보다도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간판’의 요소가 중요하다”며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다카이치에겐 분명 유리하다”고 전했다. 핵심 키워드 셋을 추려 그를 집중 분석한다. ‘아베 걸즈’, ‘가면부부’, ‘망언’이다.

①아베 걸즈 선봉장

2014년은 아베 총리 제2의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2006~2007년 단기로 끝난 1기의 실패를 뒤로 하고 두 번째로 일본의 총리가 된 그는 일군의 여성 정치인을 마음먹고 발탁한다. 이들을 ‘아베 걸즈(安倍ガ-ルズ)’라고 일본 언론은 불렀고, 대표 주자 중 한 명이 다카이치다. 일본 정계의 대표 세리머니 중 하나가 총리가 새 내각을 꾸릴 때마다 연미복 등 성장(盛裝)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인데, 2019년 이 사진에서 다카이치는 네이비색 롱 드레스를 입고 아베와 같은 맨 앞줄에 섰다.

2019년 아베 총리의 개각 뒤 기념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다카이치. EPA=연합뉴스

2019년 아베 총리의 개각 뒤 기념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다카이치. EPA=연합뉴스

일본에서 ‘아베 걸즈’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다카이치 외에도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국방장관) 등이 있다. 다카이치와 이나다 모두 한국과는 악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정치인을 앞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라며 강행해온 게 대표적이다. 아베의 정책 기조를 경쟁적으로 계승하며 아베 색을 강화하는 게 이들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지난 15일 우익 성향 산케이(産經)신문과 인터뷰에선 한국과의 위안부 문제 및 강제징용 이슈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세계를 향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여러 수단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역사외교’는 너무 약하다”며 “이를 강화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각 부처에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부서를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 산하에 두면 좋다”고 말했다. 내각을 총동원해 한국과의 역사외교 전면전을 선포하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②‘잉꼬부부’에서 ‘가면부부’로  

‘인간 다카이치’는 어떤 사람일까. 1961년생으로 올해 꼭 60세인 그는 정계입문 뒤인 2004년, 43세였던 때 면사포를 썼다. 같은 당 동료 의원 야마모토 다쿠(山本拓)와의 결혼하면서다. 정치적 동지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순간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다카이치는 아베 걸즈의 선봉으로 자민당의 살림살이를 도맡는 중책인 총무상에 임명되는 등, 남편보다 승승장구한다. 그럼에도 부부금슬은 변함없음을 과시했다. 남편 야마모토 의원이 “치즈 퐁듀를 저녁식사로 직접 요리해줬고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직접 사와서 축하해줬다”고 하면서다.

 다카이치의 결혼 당시 사진과 함께 이혼 사실을 보도한 일본 ANN 유튜브 방송 캡처. [ANN Youtube]

다카이치의 결혼 당시 사진과 함께 이혼 사실을 보도한 일본 ANN 유튜브 방송 캡처. [ANN Youtube]

그러나 당시 일본 정계에선 이들에 대해 “가면부부”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아사히(朝日)신문 등 언론은 보도했다. 일종의 ‘쇼윈도 부부’인 셈이다. 실제로 이들은 2017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아사히는 “가면부부가 가면을 벗었다”고 제목을 달았다. 당시 다카이치는 “정치적 견해 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정책 활동에 몰두하고 싶다”는 입장을 냈다.

③자수성가 ‘프로 망언러’

일본 정계에서 여성의 입지는 넓지 않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특별시장 격인 현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정도가 두각을 드러내는 정도다. 그 외 오부치 유코(小淵優子) 의원 등이 존재감이 있는 편이지만 세습 정치인이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경합하는 여성 정치인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간사장 대행 역시 노다 우이치(野田卯一) 전 장관의 손녀다. 다카이치는 그런 면에선 자수성가한 정치인에 속한다. 도쿄(東京)가 대표하는 긴키(關東)와 대비되는 간사이(關西) 지방의 나라(奈良) 출신으로, 고베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엘리트 정치인 사관학교 격인 마쓰시타 정경숙을 수료했다. 이후 경제학 및 경영학 교수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2013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중인 일군의 자민당 전현직 의원들. 참배자들 둘째줄에 다카이치가 보인다. [중앙포토]

2013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중인 일군의 자민당 전현직 의원들. 참배자들 둘째줄에 다카이치가 보인다. [중앙포토]

한국에선 다양한 ‘망언’으로 회자돼왔다. 일본의 침략을 두고 “자위를 위한 전쟁이었다”거나, 초선의원 시절엔 “적어도 나 자신은 전쟁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없는 세대이므로 반성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아베 총리 첫 집권기인 2007년, 국제사회의 비판을 감안해 아베 본인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카이치는 참배를 강행했다. 아베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일종의 확성기로 역할을 자임한 그가, 이젠 아베의 차차기를 꿈꾸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