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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날 독점하고 싶겠나" 요즘 청춘의 슬픈 연애 [MZ버스 엿보기]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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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출산 포기하고 ‘존버’하고 있다는데 그런가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애·결혼·출산 포기하고 ‘존버’하고 있다는데 그런가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를 누가 독점하고 싶어할까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가 한창인 20대 남성 박모(27)씨는 자신의 연애를 ‘시장의 원리’로 전망했다. “누군가와 만나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만, 비용 문제가 크다”면서다. 그는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자원이 나에게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라고도 했다. 결혼에 대해 물었더니 “제 앞가림도 못 하는데요…”라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생존 본능이 앞서게 되는 세대

2010년 초반 대한민국에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의 ‘삼포세대’라는 용어가 당시 청년들의 현실을 대변했다. 그 10년 후인 지금은 청년들의 삶이 나아졌을까. 전문가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청년들이 점차 적응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MZ세대에 “재생산(출산) 본능보다 생존 본능이 앞선 세대”라는 평가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는 MZ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거나 직장 생활에서 남다른 경력을 쌓고자 이른바 ‘존버(비속어와 버티다를 합쳐서 줄인 말)’ 한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이를 가리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치솟는 집값과 취업난, 경쟁을 심화시키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하면서 이런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새로운 사회적 진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MZ세대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게 되면서 생존 본능이 재생산 본능보다 더 앞서게 됐다”고 진단했다.

‘존버’와 ‘포기’ 사이

중앙일보가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존버’하고 있다는데 그런가요?”라는 물었더니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응답(47.4%)은 ‘동의한다’(32.7%)보다 더 많았다.

한 응답자는 MZ세대를 가리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탈진한 불쌍한 청년들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고독한흙수저’를 운영하는 대학생 김종옥(23)씨는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실패에 직면하고 누군가와 갈등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이제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취업과 결혼, 내 집 마련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젊은이 중 상당수는 경쟁을 안 하고 욜로라이프로 살며, 그 안에서 유유자적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는 반론도 있었다.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주택 매매와 전세 매물 시세가 붙여있다. 뉴스1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주택 매매와 전세 매물 시세가 붙여있다. 뉴스1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MZ세대들이 부동산 문제에 예민한 모습이었다. 중앙일보가 마련한 오픈채팅방 토론에서 아이디 ‘짠해’는 “사실 부모님 때를 생각하면 MZ세대가 삶의 질은 더 높다”면서도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부동산을 꽉 잡고 있고, 그 가치가 계속 치솟는 상황에서 아무리 돈을 벌어서 모아도 집을 갖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아이디 ‘빈털’인 참여자는 “결국에는 주거 불안정이 결혼과 출산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불만 표출에 더 익숙해 보이는 MZ세대의 내적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MZ세대가 ‘협력’과 ‘포용’의 가치 또한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석주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기존 균형의 일부가 된 기성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각종 제도적 관행에 문제를 제기해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의 결과로 나타난 격차의 구조를 완화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협력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정 외에도 포용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며 “낙오자를 배척하기보다는 상생에 대해서도 고민을 같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 세대에 감사, 불공정엔 분노”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힘든 건 ‘나’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응답자의 76.1%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 응답자는 “과거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세대임은 분명하나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세대임도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다만 그 기회가 적으며 여건 마련이 어렵다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한 응답자는 “부모세대 역시 개개인으로 보면 그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덕분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일련의 사건들에서 경험했듯이, 권력과 정보를 교묘하게 이용해 불공정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기득권에 대해서는 분노와 반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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