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상언의 '더 모닝'] '하위' 국민 만드는 지원금, 또 하실 건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코로나 상생 국민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온라인상에 등장한 재난지원금 패러디물. 자동차 광고를 빗댔다. 원래 광고에는 'OOO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OOO은 자동차 모델명이다.

온라인상에 등장한 재난지원금 패러디물. 자동차 광고를 빗댔다. 원래 광고에는 'OOO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OOO은 자동차 모델명이다.

어제 이 레터의 독자로부터 받은 e-메일의 내용입니다.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주말에 동생과 친정어머니를 만났다. 밖에서 점심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이 지원금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지원금 대상자가 아니다. 동생과 내가 사는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마도 식구 수 차이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밥값을 계산하려는데 동생이 ‘나라에서 돈도 받았는데 내가 낼게’라며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잠시 멈칫하다 ‘내가 나오라고 했으니까 내가 낸다’며 동생을 밀쳐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밥값 못 내게 한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생은 재난지원금 받게 된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돈이 생긴 것은 좋은데 ‘내가 이런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재난지원금 못 받는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라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독자가 제게 메일을 보낸 것은 제가 7월 29일 자 중앙일보에 쓴 칼럼 ‘88%의 정치공학’ 때문이었습니다. 그 칼럼의 한 대목은 이렇습니다. ‘88%대 12%는 상ㆍ중ㆍ하의 3개 층이 아닌 상ㆍ하 2개 층 구조의 피라미드를 만든다. 12%를 빼면 다 하위층이다. 정부도 ‘하위 88%’라고 표현한다. 그 구조에서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믿어 온 시민 중 상당수가 하위층이 된다. 25만원의 지원금이 이를 각인시킨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라는 온라인 공간에 다음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솔직히 안 받는 애들 부러움. 동업 사기당하시고 사업 망해서 빚더미 떠안은 울 가족. 내가 고3 때까지 좁고 낡고 바퀴벌레 나오는 집 전세 전전하면서 살다 2년 전쯤 겨우 집 마련해서 얻은 2억도 안 되는 빌라 18평. 주야 교대로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간호대 다니는 누나 이렇게 사는데 솔직히 친구들 보험료 초과다 뭐다 하면서 씅낼 때 난 가만히 있었지만 부러웠음. (중략) 쩝…. 걍 넋두리해 봤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트위터에는 재난지원금 못 받는다고 툴툴거리는 직장 상사 때문에 짜증 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이런 종류의 글입니다. ‘우리 팀장도 1년에 2억 가까이 벌고 분당에 아파트가 있고 얼마 전에 판교 오피스텔 구입했다고 자랑하더니 본인은 재난지원금 못 받는다고 재난지원금 받는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이런 X소리 그만 듣는 게 소원임.’

정부 지원금, 요긴하게 쓰는 분 많을 것입니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과연 이게 국가 정책으로 합당한지 생각해 보자는 뜻입니다. 88%에게(이의 신청 때문에 곧 90%가 된다고 합니다) 25만원씩, 10조원 넘는 나랏돈이 쓰입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행정 조치(영업 제한) 때문에 손실을 본 분들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가 발생하지 않은 국민에게도 지원금을 줍니다.

재난지원금 지급 목적 중 하나는 소비를 늘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화점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했습니다. 이 뜻은 어느 정도 실현될까요? 중앙일보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스마트워치를 사는 사람, 지원금을 현금으로 ‘깡’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재난지원금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과연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10만원 결제할테니 9만원 주세요"…재난지원금 '깡' 또 활개

“주문이 본사에서 막혀버렸어요. 워낙 많이들 찾으니까 물량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1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 편의점에 “재난지원금으로 스마트워치를 살 수 있냐”고 묻자 돌아온 말이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5차 재난지원금) 지급 7일째인 이날 블로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는 일부 편의점에서 스마트워치나 무선이어폰 등 전자제품을 재난지원금으로 샀다는 후기가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의 한 맘 카페에는 지난 11일 “○○ 편의점에서 갤럭시워치를 주문할 수 있는데, 3주 이상 걸린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함께 올라온 사진에 따르면 이 지역 내 한 편의점은 “재난지원금으로 스마트워치를 구매 가능한 곳은 ○○편의점이 유일하다”는 안내문을 문 앞에 붙여뒀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러 군데 전화 돌렸는데 다 재고가 없다고 했다” “두세 군데 발품 팔아도 다 없었다”와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재난지원금으로 갤워치” 적정성 논란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지급 후 현명한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의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한편에서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살리자는 지급 취지 등과는 다르게 재난지원금이 사용되는 데 따른 문제도 지적된다.

이날 온라인에서는 스마트워치 등 전자제품을 재난지원금으로 살 수 있는 편의점 위치와 같은 정보 등이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다. “다짜고짜 전화하면 점주가 모를 수도 있으니 공문을 확인해달라고 하라” “통신사 할인은 안 되니 참고하라” 등과 같은 ‘꿀팁’도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서울 지역 한 맘 카페에서는 한때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금인데 갤럭시워치를 사는 건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과 “나름 내수 진작이라고 생각한다”는 반박이 맞붙기도 했다.

‘깡’도 다시 기승…자영업자 한숨

부작용은 또 있다. 이른바 ‘깡(불법 환전)’ 행위가 재난지원금 지급과 맞물려 다시 활개 치는 모양새다. 문의가 온라인에서 줄 잇고 있다. “재난지원금 현금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냐” 등과 같은 식이다. 실제로 “재난지원금을 현금화해주겠다”는 한 업자에게 문의하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8만원을 긁게 해주면 현금 6만원으로 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한숨이 쏟아진다. 경기도 수원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스마트워치는 워낙 고가라 점주 사이에서도 ‘이게 나갈까’ 했었는데 문의가 쏟아지더니 단 이틀 만에 완판됐다”며 “점주는 판매가의 5% 정도 가져가는 왜곡된 구조다. 업계나 주변 상인들은 재난지원금의 (고가제품 판매) 쏠림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때 피해 본 이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했다고 본다”며 “이 같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정책은 (우리와 같은 자영업자들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왜 국민에게 주는지에 대한 목적과 의도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세우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지급 취지에 맞게 그 용도 등을 분명하게 설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이상언의 '더 모닝'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려면 중앙일보 홈페이지(www.joongang.co.kr)에서 신청하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