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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9·11 20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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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당신,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신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네요. 난 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가족들이 잘 챙겨주고 있으니.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 줘요.”

“할어버지,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 걸 지켜봐 주고 있죠. 제가 할아버지 자랑스러워하는 거 아시죠. 할아버지를 언제나 기억할 거에요. 사랑해요.”

“동생,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이 어제 같다. 너의 숨이 끊어졌을 때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언제나처럼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어. 보고 싶고 너무 그립다.”

“여보, 20살 된 아들이 당신을 똑 닮았어요. 엄마 놀리는 거랑 하는 짓이 어찌나 당신하고 똑같은지. 항상 우리를 지켜봐 줘요.”

“아버지, 아버지가 입던 그 유니폼을 제가 입고 있네요. 아버지의 유산(legacy)을 기억하고 잘 이어갈게요. 사랑해요.”

“동생, 같이 만화책 보던 거 아직도 잊지 않고 있고 형은 아직도 널 기억하고 있다. 둘이 듣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를 같이 듣고 싶구나. 자랑스럽고 사랑한다.”

9·11 테러 20년을 맞아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선 추모식이 열렸다. 유가족 대표는 20년 전 그날 테러로 세상을 떠난 297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 어머니이자 아버지, 여동생이자 남동생, 딸이자 아들, 할머니이자 할아버지였던 이들이었다. 테러 희생자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20년 전 사망한 남동생이 쓰던 소방관 모자를 쓰고 하늘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형. 남편의 이름을 읽으며 마지막까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아내. 유가족 대표 뒤에 선 유니폼 차림의 소방관과 경찰관은 눈물을 참아내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눈가로 조금씩 흘러내린 눈물을 가리진 못했다. 테러 희생자 이름이 불릴 때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흔들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부부는 행사 내내 서서 희생자를 추도했다. 이날 발표한 영상엔 9·11 테러 20년 앞에선 미국의 고민이 담겼다. “통합은 모두가 같은 것을 믿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서로와 이 나라에 대한 존중과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