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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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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에서 마주한 김대업씨는 힘이 없어 보였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흥분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던 평소의 그와 동일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2002년 9월 한참 기세를 올리다가 돌연 입원한 그는 병실까지 찾아온 몇몇 기자들을 내치지 않았다. 다만 취재에 응하는 대신 주로 하소연을 늘어놓았고 급기야 눈물까지 보였다.

동기가 궁금해졌다. 탁월한 병역비리 전문가이자 그 스스로 병역비리 브로커이기도 했던 그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고초’를 마다치 않으면서 유력 대선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했을까. 의문이 다소 해소된 건 2013년 그가 “병풍 사건을 친노 인사와 모의했는데, 그가 나에게 준다며 받은 50억원을 중간에서 착복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제보와 폭로의 배후에 순수가 자리 잡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행동에 나서는 영화 속 정의파 제보자를 현실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상당수의 제보에는 다종다기한 반대급부에 대한 노림수가 깔려있을 공산이 크다.

BBK 사건 폭로자 김경준씨는 형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2007년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주가조작, 횡령 등 혐의의 일부를 넘기지 않으면 그 자신이 모두 책임져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재미교포인 그가 ‘검찰이 감형을 내세워 협박·회유했다’는 내용으로 삐뚤빼뚤 적은 자필 메모를 비롯해 무수한 자료들을 언론사와 정치권에 제보했던 이유다.

고발 사주 의혹을 들고나온 조성은씨는 어떨까. 적지 않은 세월 정치판에 몸담았던 그의 전력이나 막후 작업에 일가견이 있는 국정원장과의 석연치 않은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훗날 ‘공신록’에 이름을 올려 지분을 요구하려는 의도를 가졌거나, 그런 방향의 조언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역사에 남는 건 제보자의 순수성이나 자격이 아니라 제보의 결과물이다.  역사를 전공한 영국 작가 톰 홀랜드는 로마 공화정의 대표적 선동 정치가 클로디우스가 “선동 정치의 채찍이 되기로 선언하면서 폼페이우스의 빈민 매수 중개인이 됐다”고 키케로를 비판한 데 대해 “이런 비난이 후안무치하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비평했다. 조씨의 주장 속에도 그 정도의 진실은 담겨있을까. 서서히 윤곽이 잡혀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