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이건 기적"…엄마들의 무릎호소 '서진학교' 놀라운 반전

중앙일보

입력 2021.09.11 05:00

'ㅁ'자 모양의 학교 가운데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이 곳, 서울에서 17년 만에 지어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다. [이택수 작가]

'ㅁ'자 모양의 학교 가운데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이 곳, 서울에서 17년 만에 지어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다. [이택수 작가]

‘서진학교’가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1979년 이 상이 제정된 이래 대학교가 아닌 학교 건물이 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이 학교는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못 지어질 뻔했다. 서울에서 17년 만에 지어진, 발달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였기 때문이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
발달장애 학생 위한 서진학교
"이런 학교 지어진 것 기적"

학교는 지어지기 전부터 유명했다. 학교 설립을 놓고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던 2017년, 한 주민토론회장에서 장애 학생의 엄마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이 알려지면서다. “지나가다가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며 호소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며 학교 건립에 물꼬를 텄다.

우여곡절 끝에 서진 학교는 지난해 3월 개교했다. 못 지어질 뻔하다가 기어이 지었고, 심지어 잘 지어서 상까지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용미 건축가(금성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교육청 프로젝트로 이 정도 수준의 학교가 지어졌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공공성과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작으로 뽑았다”고 전했다.

학교 부지에 한방병원?…갈등이 커졌다  

서진학교의 건축기는 특수학교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학교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마곡동으로 이전한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섰다. 가양동의 공진초는 사실상 폐교했는데 또 다른 차별 탓이었다. 공진초는 1990년대 초 가양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영구임대아파트인 4단지와 5단지의 옆에 자리잡았다. 개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인근에 또 다른 초등학교가 개교했고, 주민들은 공진초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아이들이 졸업한 뒤 학생 수는 대폭 줄었다. 결국 학교는 문을 닫고 이름만 마곡동으로 옮겨졌다

2012년 서울시 교육청은 이 부지에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됐다. 강서구에 이미 특수학교가 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약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강서구 어딘가에서 허준이 태어났으며, 학교 앞 거리가 허준 테마 거리라는 것이 한방병원 건립의 근거가 됐다.

장애 학생의 엄마들이 서진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호소해 화제가 됐다. [중앙포토]

장애 학생의 엄마들이 서진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호소해 화제가 됐다. [중앙포토]

교육청이 계획안을 밝힌 지 5년이 지나도록 갈등은 심해졌고 결국 엄마들이 무릎을 꿇었다. 서진학교를 짓게 됐지만 조건이 붙었다. 옛 학교 일부를 주민을 위한 문화복합시설로 만들고, 학교 통폐합으로 새 부지가 나오면 시 교육청이 한방병원 건립에 최우선으로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설립은 교육감 권한이라 이런 합의가 필요 없고, 특수학교가 지어질 때마다 이런 합의를 해야 하냐며 엄마들은 속이 상했지만, 어찌 됐든 학교는 지어져야 했다. 2017년 서울시 교육청은 설계공모전을 통해 건축가를 뽑았고, 유종수ㆍ김 빈 건축가(코어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가 당선됐다.

학생에 맞춰 지었더니 건축상 대상

서진학교의 복도는 일반 학교의 두배 가까이 된다. 색으로 동선을 표시해 아이들이 위기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게 했다 . [이택수 작가]

서진학교의 복도는 일반 학교의 두배 가까이 된다. 색으로 동선을 표시해 아이들이 위기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게 했다 . [이택수 작가]

서진학교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과정인 전공과까지 모두 한 건물에 있다. 한 학생이 입학하면 전공과를 마치기까지 14년을 생활한다. 학교에는 세탁실·가사실·감각운동실·여가생활실 등 다양한 특별실이 있다. 학생들은 일상생활부터 직업 훈련까지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운다. 이런 학생들을 잘 보조하기 위해 교직원 수도 많다. 한 학급 당 최대 정원이 초ㆍ중학교는 6명, 고등학교는 7명인데 한반 당 담임선생님 외에 수업 보조 선생님이 두 명씩 배치된다. 총학생 수는 170명이고, 교직원 수가 123명이다.

학교가 개교하자 정원수의 두 배 이상 되는 아이들이 입학하길 희망했지만, 공간도 지원 인력도 한계였다. 이 학교가 아니면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없으니 엄마들은 그렇게 간절했다. 서진학교의 홍용희 교장은 “아이들이 졸업 후에도 집에만 있지 않도록, 아이들을 세금 내는 시민으로 육성하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갈등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서진 학교는 건축가에게 절대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건축비 예산이 3.3㎡당 495만원이었다. 일반 학교의 건축비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 예산으로 서진 학교를 지으라는 것은 기적을 만들라는 것과 같았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공동주택 기본형 건축비가 지난 3월 기준으로 3.3㎡당 653만4000원이다. 김빈 건축가는 “교육청의 요청으로 설계 과정에서 건물 면적이 처음보다 늘어났고 이에 따라 공사비도 늘어나 3.3㎡당 682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이 예산으로도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적은 예산으로 아이들이 가진 특성과 교육을 연계해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보통의 학교도 사용자인 아이들에 맞춰 지어야할테지만 붕어빵 찍듯 똑같이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건축가는 우선 ‘ㄷ’자 모양이던 기존 학교의 일부만 리모델링하고 부족한 공간을 신축해 더했다. 기존 공간을 다 쓰면 좋았을 테지만, 절반 가량을 지역 주민을 위한 도서관으로 남겨둬야 했다.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새로 신축한 건물을 붙여 완성한 서진학교.[이택수 작가]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새로 신축한 건물을 붙여 완성한 서진학교.[이택수 작가]

교실 사이에 있는 안정실에는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이택수 작가]

교실 사이에 있는 안정실에는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이택수 작가]

옛 학교의 한 축만 리모델링하고 운동장 부지를 헐어 ‘ㄷ’자 모양의 건물을 신축해 옛 건물에 붙였다. 결국 가운데 중정을 둔 ‘ㅁ’자 모양의 학교가 만들어졌다. 지역주민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이 학교 건물에도 그대로 남은 셈이다.

‘ㅁ’자 공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발달 장애의 특성상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혹여나 갈 곳을 잊고 헤매더라도 한 층에서 맴돌도록 디자인했다. 공간 전체가 일종의 회유 동선이 된다.

리모델링한 기존 학교의 복도 폭은 2.4m로 좁지만, 신축한 공간의 복도 폭은 4.5~5.5m에 달한다. 넓은 복도는 제2의 교실 역할도 한다. 수업 중에 불안한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을 위해 교실과 교실 사이에 안정실을 따로 만들었지만, 복도도 개방감 있는 안정실 역할을 한다.

층마다 색으로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이택수 작가]

층마다 색으로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이택수 작가]

층마다 중정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복도 공간을 두개 씩 만들었다. 콘서트 무대가 되기도, 열린 교실이 되기도 한다. [이택수 작가]

층마다 중정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복도 공간을 두개 씩 만들었다. 콘서트 무대가 되기도, 열린 교실이 되기도 한다. [이택수 작가]

학교 공사를 할 당시 디자인 감리에 대한 대가는 없었다. 하지만 건축가는 매주 공사현장을 찾았다. 이들의 선의와 희생 덕에 학교 완성도는 높아졌다.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만 아직 요원한 일이다.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국 건축의 문제는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건데 특히 학교 건물이 심각하다”며 “학교 건축비 예산을 늘려야 설계비도 늘어나고 경쟁력 있는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작업하면서 건물 수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늘날의 학교는 편한 공간일까   

서진학교의 중정에는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나무를 가운데 놓고 나선형으로 디자인한 의자가 있다. 층층이 단차가 발생하는 덕에 의자의 높이가 다양하다. 연령대가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서진 학교의 맞춤형 의자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높여 만든 화분도 중정에 놓여 있다.

이렇듯 서진학교에서는 모두가 배려받는다. 유종수 건축가는 “특수학교라는 걸 모르고 서진학교에 온다면 일반 학교와 유별나게 다른 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배우고 놀 수 있는 학교를 만들었을 뿐이다.

학부모 예유정(49)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다 전학 왔는데 이런 학교서 배울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나선형 벤치가 있는 중정. 건축가는 휠체어를 타는 학생을 배려해 단을 높인 화분도 디자인했다.[이택수 작가]

나선형 벤치가 있는 중정. 건축가는 휠체어를 타는 학생을 배려해 단을 높인 화분도 디자인했다.[이택수 작가]

오늘날의 학교는 여전히 쭉 나열된 교실과 복도의 집합체다. 아이들은 그런 불편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서진학교의 넓은 복도, 통창, 중정, 발코니, 사용하기 편한 화장실, 다양한 특별실 등은 일반 학교에서도 필요한 공간이다. 이런 학교가 많아진다면 특수학교를 따로 지을 필요 없이,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통합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된다.

박광재 한국복지대 교수(유니버설건축과)는 “서진학교는 장애 학생이 다니는 특이한 학교가 아니라 일반학생도 생활하기 좋은, 수준 높은 교육공간으로 만들어졌다”며 “학교야말로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 유연하게 맞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