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유리도 시비" 북촌·서촌·은평 죄다…판박이 한옥마을,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8.13 14:00

업데이트 2021.08.13 21:11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의 모습. 서울시가 신한옥 단지로 조성했지만 디자인 규제 탓에 비슷한 한옥이 지어졌다. 한은화 기자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의 모습. 서울시가 신한옥 단지로 조성했지만 디자인 규제 탓에 비슷한 한옥이 지어졌다. 한은화 기자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은 2012년부터 시작해 현재도 조성 중인 마을이다. 156개 필지 중 3분의 2 이상에 한옥이 들어섰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유례없는 신축 한옥마을이다. 그런데 집이 죄다 비슷하다. '2층 한옥'이라는 은평 한옥의 특징을 제외하면 북촌ㆍ서촌의 한옥과 비교해도 동네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 닮았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조선시대 디자인' 규제로
민속촌처럼 비슷해진 한옥

은평한옥마을은 땅의 절반에 집을 지을 수 있고(건폐율 50%), 2층으로 올릴 수 있어(용적률 100%) 주민들이 2층 한옥을 많이 택했다. 단층 한옥 위주인 구도심의 한옥과 다른 지점이다. 그런데 왜 서로 판박이가 됐을까. 한옥 주인장의 취향이 닮아서 동네 구분 없이 비슷한 한옥을 짓고 있는 걸까.

한옥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시가 한옥 디자인 규제를 해서 어쩔 수 없이 판박이 한옥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은평한옥마을의 주민 박성수(48) 씨는 “은평한옥마을이 한옥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실험장이 될 수 있었는데 서울시의 심의제도가 결국 똑같은 한옥 마을을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56개 필지 중 3분의 2이상 한옥이 완공된 은평한옥마을의 모습.  한은화 기자

156개 필지 중 3분의 2이상 한옥이 완공된 은평한옥마을의 모습. 한은화 기자

규제는 역설적이게도 한옥 지원정책에서 출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8년 한옥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인 육성정책을 펼쳤다. 서울의 미래자산으로 한옥을 육성하겠다며 은평한옥마을도 그 일환으로 조성됐다. 구도심의 경우 각종 정비사업으로 한옥이 철거되자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해 개발을 막는 대신 한옥을 신축하거나 개ㆍ보수할 때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2016년부터 서울 전역의 한옥이 지원대상이 됐다. 은평한옥마을의 경우 신축 시 최대 8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원을 위한 주요 잣대가 ‘조선시대 한옥’이다. 서울시의 한옥 비용지원 심의 기준에 따라 서울시건축자산전문위원회가 한옥 심의를 하는데 조선시대식 디자인 규제를 하는 게 문제다. 따르지 않으면 지적사항마다 지원금을 5%씩 깎는다. 서울시 한옥관리팀 관계자는 “법에 한옥은 주요 구조가 기둥ㆍ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전통을 고려해야 한다”며 “무엇이 전통이냐를 두고 논란은 있지만, 하루아침에 개혁할 수 없고 여러 의견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지 않더라도 한옥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자치구마다 엇비슷한 디자인 규제를 한다. 따르지 않으면 인허가를 받을 수 없다. 1930년대 지어진 북촌 한옥과 2010년대에 지어진 은평 한옥의 모습이 점점 조선시대 한옥으로 박제되고 있는 까닭이다.

통유리 금지해놓고 공공 한옥만 통유리 사용

1.5층 한옥으로 설계한 낙락헌의 모습. 아래는 양옥, 위는 한옥이다. [박영채 작가]

1.5층 한옥으로 설계한 낙락헌의 모습. 아래는 양옥, 위는 한옥이다. [박영채 작가]

은평한옥마을에 지어진 ‘낙락헌’은 한옥의 진화를 보여준 집으로 호평받았다. 2017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하마터면 이렇게 못 지을 뻔했다. 서울시의 지원금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지어진 집이지만, 은평구청의 건축인허가 심의에서 두 번이나 반려당했다. 전통성이 문제였다.

집은 은평한옥마을에 주를 이루는 2층 한옥과 달리 이른바 1.5층 한옥이다. 반지하 부분이 양옥, 지상은 한옥인 구조다. 양옥의 콘크리트 구조가 한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밖에서 보인다. 집을 설계한 조정구 건축가(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2층 한옥이 하자 문제 등 아직 불안정해서 양옥과 한옥이 결합한 1.5층으로 지었고 한옥 주방 아래를 띄워서 주차장으로 활용했는데 이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의 콘크리트 기단을 심의위원회에서 전통이 아니라며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캔틸레버 콘크리트가 한옥을 받치고 있는 낙락헌.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 해법이다.[박영채 작가]

캔틸레버 콘크리트가 한옥을 받치고 있는 낙락헌.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 해법이다.[박영채 작가]

낙락헌은 주방의 두면이 통유리창이지만 서울시는 전통을 이유로 창호살을 대도록 규제하고 있다. [박영채 작가]

낙락헌은 주방의 두면이 통유리창이지만 서울시는 전통을 이유로 창호살을 대도록 규제하고 있다. [박영채 작가]

통유리창도 시빗거리였다. 낙락헌의 주방은 두면이 통유리다. 마치 정자처럼 주방의 개방감이 뛰어나다. 하지만 서울시 심의 기준에 따르면 전통적인 창살이 있는 목창호만 써야 한다. 즉 유리에 띠살·아자살·완자살처럼 복잡한 나무 살대를 대야 한다. 그나마 간결한 용(用)자살은 쓰지 못하게 규제한다. 조 건축가는 “한옥의 본질적인 특성인 개방감과 투명성이 통유리라는 재료와 잘 맞아 떨어지는데도 이를 전통이 아니라고 제한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낙락헌의 집주인 이병철(58) 씨는 “조선 시대와 달리 좋은 자재도 많이 개발됐는데 신한옥 단지로 마을을 조성한다 해놓고 살림집을 문화재처럼 규제하고 있다”며 “결국 심의에 잘 통과되는 집으로 모두 비슷해졌다”고 덧붙였다.

원래 창호 살은 유리가 없던 시절에 쓰던 창호지를 고정하기 위해 필요했다. 외부에 면한 창은 보안을 위해 더 촘촘한 창호 살을 썼다. 하지만 신소재인 유리가 보급되면서 창호 살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창호 살이 한옥 내부를 더 답답하게 했던 터다.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종로구 필운동 홍건익 가옥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인데 안채에 살대가 없는 통유리창을 썼다. 하지만 유리 새시가 보편화한 오늘날에는 쓸 수 없다.

은평한옥마을의 상가 역시 조망을 위한 통유리창을 쓸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은평한옥마을의 상가 역시 조망을 위한 통유리창을 쓸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서촌의 신축 한옥의 모습. 바깥 창호에 서울시가 권장하는 격자무늬의 띠살창을 썼다.  한은화 기자

서촌의 신축 한옥의 모습. 바깥 창호에 서울시가 권장하는 격자무늬의 띠살창을 썼다. 한은화 기자

통유리창은 상업공간에도 설치하면 안 된다. 은평한옥마을의 주요 진입로에는 카페와 편의점이 들어선 한옥 상가가 있는데 똑같은 규제를 받았다. 결국 심의용 창호 살을 댔다가 뗀 집이 수두룩하다. 방문객은 통창으로 북한산과 한옥마을을 시원하게 조망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민간한옥에서는 통유리창을 엄격히 규제하지만, 공공 한옥에서는 통유리창을 쓴다. 고무줄 심의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서울시는 최근 심의 기준을 바꿨다. 비주거용 한옥의 경우 가로 측 입면에 1~2개 범위에서, 주거용 한옥은 밖에서 안 보이는 대청이나 누마루에 1개만 통유리를 쓸 수 있다. 물론 심의위원회가 필요성을 검토해 허가해야 한다.

이리 오너라~ 조선 시대처럼 대문도 양쪽으로 열어야

비대칭 양개문을 설치한 한 한옥의 모습. 실용성을 위해 도어락으로 고정된 문 외에 주로 쓰는 문을 더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대칭형 문을 설치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비대칭 양개문을 설치한 한 한옥의 모습. 실용성을 위해 도어락으로 고정된 문 외에 주로 쓰는 문을 더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대칭형 문을 설치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한옥마다 똑같이 생긴 대문도 규제 탓이다. 무엇보다 대문을 위한 공간, 대문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문을 열고 바로 실내로 들어갈 수 없게 규제한다. 꼭 마당을 거쳐야 한다. 문도 양쪽으로 열어젖힐 수 있는 대칭형 양개문(兩開門)만 써야 한다. 서촌이나 북촌의 도심 한옥은 집 자체가 작다 보니 대문간을 따로 두는 것이 버겁지만 조선 시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잠금장치도 문제다. 나무 걸쇠로 두문을 걸어 잠그던 조선시대와 달리 요즘에는 도어락을 쓴다. 결국 도어락을 설치한 문은 고정해놔야 해서 한 쪽문만 쓰게 된다. 문 두짝을 만들어도 한짝밖에 못 쓰니 주로 쓰는 문을 더 크게 만들어 비대칭형 대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몇 집만 통과되고 금지사항이 됐다.

종로구 옥인동에 최근 수선을 마친 한옥의 모습. 원래 있었던 옥빛 타일을 그대로 보존했지만, 서울시는 타일이나 벽돌 같은 자재를 쓰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종로구 옥인동에 최근 수선을 마친 한옥의 모습. 원래 있었던 옥빛 타일을 그대로 보존했지만, 서울시는 타일이나 벽돌 같은 자재를 쓰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은화 기자

최근 수선을 한 종로구 옥인동의 한 한옥은 다른 집과 달리 옥빛의 아름다운 타일 외벽을 갖고 있다. 옛날 그대로 보존했고, 이를 위해 집주인은 일부러 서울시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 서울시의 심의 규정에 따르면 타일이나 벽돌을 못 쓰기 때문이다. 회벽이나 사고석 같은 돌만 쓸 수 있다. 근대도시건축 산물인 서촌과 북촌에는 당시 많이 쓰던 자재인 타일이나 벽돌 외벽을 가진 한옥이 꽤 많다. 하지만 결국 한옥 육성책에 따라 동네의 고유한 특성은 지워지고 있다.

신한옥으로 철골 한옥 지어놓고 한옥이 아니다?

은평한옥마을에는 서울시가 한옥 등록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한옥이 한 채 있다. 이 한옥의 주요 구조부는 철골이다. 그런데 나무기둥처럼 보인다. 철골을 얇게 자른 나무로 다시 감쌌기 때문이다. 집주인 최원선(48) 씨는 “나무가 수축ㆍ팽창하면서 발생하는 한옥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공간 활용을 하기 위해 시도했다”며 “다른 재료와 복합해 사용할 때 마감을 목재로 하면 된다는 방침에 따라 지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후 규정을 매만지면서 이 집은 한옥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서울시 한옥관리팀 관계자는 “주요구조부가 목재가 아닌 철골이라 한옥 등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은평한옥마을의 마을회관의 모습. 나무 기둥 안에 철골이 박혀 있는 철골한옥이다. 한은화 기자

은평한옥마을의 마을회관의 모습. 나무 기둥 안에 철골이 박혀 있는 철골한옥이다. 한은화 기자

그런데 은평한옥마을에는 철골 한옥이 한 채 더 있다. 은평구가 운영하는 마을회관이다. 국토부의 신한옥형 공공건축물 공모사업을 통해 2016년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연면적 249㎡)로 국비와 시비 합쳐 공사비만 13억2000만원이 들었다. 공공에서 신한옥으로 철골 한옥을 지어놓고 한옥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조정구 건축가는 “상업공간으로 바뀐 익선동의 한옥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반대중은 새로운 한옥을 기대하고 받아들일 역량을 갖고 있는데 오히려 심의로 꽁꽁 묶은 상황”이라며 “특히 은평과 같은 신한옥 단지에서는 현대건축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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