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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영화…문화 교류 늘수록 한·일간 편견·차별 사라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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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오사카조선고급학교 학부모들이 일본 정부의 고교무상화 정책 차별과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지운]

오사카조선고급학교 학부모들이 일본 정부의 고교무상화 정책 차별과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김지운]

문화의 계절 가을에는 심포지엄이나 영화제가 많이 열린다. 나는 그중에서도 ‘한·일문화교류’ 또는 ‘재일코리안’ 관련 행사에 많이 참석한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 등 한국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을 하는 나는 한·일문화교류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 발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문화교류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저절로 활성화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여 주거나 보는 목적으로 영화제에 영화인과 관객이 참가하고 교류하게 된다. 교류가 목적이 아니라 뭔가 목적이 있어서 교류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러한 자연스러운 교류를 막지 않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솔직한 의견이다.

200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 붐의 가장 큰 공헌자는 김대중 대통령인 것 같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그전까지 유입이 제한됐던 일본 대중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했다. 그 당시 한국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계속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면서 오히려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문화정책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였다. 이 원칙이 한·일문화교류에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지원하되 간섭 안 한’ DJ, 한류에 공헌

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999:소녀대전’. [사진 Mne]

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999:소녀대전’. [사진 Mne]

최근 다시 한국에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나도 그중 SBS  ‘LOUD:라우드’와 Mnet ‘걸스플래닛999:소녀대전’을 즐겨 보고 있다. ‘라우드’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와 P NATION이 각각 선발한 보이그룹 데뷔 멤버가 결정됐는데 일본 출신은 아마루, 케이주, 고키 3명이 들어갔다. 개인적으로는 아마루를 가장 응원하고 있었다. 박진영 프로듀서가 칭찬했듯이 그의 목소리도 매력적이었지만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그의 표정에 끌렸다.

한편 ‘걸스플래닛’은 데뷔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국·중국·일본 3개국에서 33명씩 총 99명이 참가하고 최종적으로 9명이 데뷔할 것이다. 130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일본 출신 참가자들은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2018년에 Mnet ‘PRODUCE48’에 일본 AKB48 계열 그룹 멤버들이 참가했을 때보다 춤도 노래도 수준이 높아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K-POP을 접해 온 세대라 그럴 것이다.

K-POP이 좋아서 모인 젊은 친구들은 출신 국가의 벽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거기엔 차별도 편견도 볼 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은 재일코리안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사진 김지운]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은 재일코리안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사진 김지운]

한편 이달 일산과 파주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재일코리안 관련 몇 작품이 상영된다. 그중 하나는 김지운·김도희 감독의 ‘차별’이다. 재일코리안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가 일본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문제를 중심으로 다뤘다. 영화를 보면 조선학교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편하게 학교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조선학교 학생도 BTS(방탄소년단)나 TWICE를 좋아하는 그냥 고등학생이다. 김도희 감독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념과 사상의 틀에서 조선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여느 중고등학생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차별’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다.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시의 영상이다. 고교무상화는 공립고등학교 수업료를 무료로 하는 제도로 사립고등학교에도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2010년 민주당 정권 때 시작했지만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조선학교에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북한 납치 문제가 그 이유였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차별을 주도하는 것이 문제다.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은 재일코리안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사진 김지운]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은 재일코리안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사진 김지운]

이에 대해 조선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과 학생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적용 제외 취소 등을 요구하는 재판을 제기했지만 최종적으로 올해 7월 최고재판소에서 조선학교 측 패소로 끝났다. 김지운·김도희 감독은 재판 제기보다 훨씬 전부터 조선학교에 촬영하러 다녔었다. 재판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어려운 건 재판을 제기해서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올 때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고 마지막에 승소로 끝나면 관객도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마음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감독을 잘 아는 나는 최고재판소 판결 결과를 들은 순간 이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완성 작품을 보고 느낀 건 재판에 이기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학교 측 변호단엔 조선학교 출신 재일코리안 변호사도 있었고 일본인 변호사도 있었다. 조선학교 출신 변호사는 “일본인 변호사들께 조선학교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며 “조선학교는 싫다고 거절당할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규슈 재판에만 80여 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도 눈길

DMZ영화제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코리안의 삶을 그렸다. [사진 도후(東風)]

DMZ영화제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코리안의 삶을 그렸다. [사진 도후(東風)]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인 변호사가 “재판의 법률적 지식만으로는 이 사건은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배우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김지운 감독은 “이번 재판을 통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조선학교와 함께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재판을 제기했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대해 그리고 재일코리안에 대해 알리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차별’뿐만 아니라 조선학교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여러 편 만들어졌다.

재판도 계속 진 건 아니다. 2017년 오사카지방재판소의 판결은 조선학교 측 승소였다. 관계자들이 승소에 흥분하는 모습이 영화에도 나온다. 김지운 감독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한다. 승소 당일 조선학교 학생이 무대에 올라 “이제야 겨우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았구나. 우리가 이 사회에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 차별받아야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연설했다.

김도희 감독은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아이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어디서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 영화에 담은 마음을 털어놨다.

재일코리안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과 그 자손들인데 대부분 고향은 분단 전의 남한이다. 그런데 조선학교를 비롯해서 북한과 연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하나의 배경을 보여 주는 영화가 이번 DMZ영화제 개막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다.

‘디어 평양’ ‘가족의 나라’로 알려진 양영희 감독이 이번엔 자신의 어머니를 찍었다.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코리안인데 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 오사카에서 공습이 심해지면서 가족의 고향 제주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또 1948년 제주 4·3 사건을 경험하고 오사카에 도망간 것이다. 그때 약혼자와 헤어졌다고 한다.

어머니는 잔혹했던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사카에는 어머니처럼 4·3 사건 때문에 제주에서 피난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재일코리안에게는 군사정권 때 한국보다 북한이 더 좋게 보였을 것이다.

밝고 즐거운 것만이 한·일문화교류가 아니다. 어른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한·일 양국에서 알아야 하고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코리안 아이들의 역사적 배경엔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의 군사정권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아는 것도 하나의 한·일문화교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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