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꿈 아냐, 진짜 아팠어" 숨진 오창 여중생 0.2초 영상 남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저씨 왜 이러세요 했으면 달라졌을까” 토로 

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오창 여중생 사건' 피해 유족을 돕고 있는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장이 A양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공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오창 여중생 사건' 피해 유족을 돕고 있는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장이 A양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공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오창 여중생 사건’ 가해자가 재판에서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숨진 A양 유족이 9일 범행 당일 딸이 친구와 나눈 휴대전화 메시지를 공개했다.

A양은 성범죄를 당한 뒤 느꼈던 정신적 고통을 토로하며 “너무 무섭다”는 말과 함께 범행 장소를 촬영한 0.2초 분량의 동영상을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A양 유족은 “딸이 성범죄를 당한 결정적 증거”라며 “범행을 부인하는 가해자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A양과 친구 B양은 지난 5월 12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두 여학생은 숨지기 전 경찰에서 성범죄와 아동학대 피해자로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는 B양의 의붓아버지 C씨였다.

유족 측이 제공한 공소장에 따르면 C씨는 2013년 B양의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B양과 함께 살았다. 검찰은 C씨가 당시 6~7세이던 B양을 성추행했으며, B양이 13세가 된 지난해에도 잠을 자고 있던 딸을 성폭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소장에는 C씨가 지난해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B양에게 4차례에 걸쳐 술을 먹인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도 적시됐다.

"꿈 아니야" 숨진 여중생 0.2초 동영상에 이불 촬영

지난 5월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5월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최종권 기자

C씨는 지난 1월 17일 자신의 집에 놀러 온 A양에게 술을 먹이고, A양이 잠든 사이 성폭행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C씨는 지난 7월 23일 열린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을 부인했다. 술을 먹인 것은 인정하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은 9일 A양 아버지와 기자회견을 열고 “A양은 1월 17일 성범죄를 당하는 와중에 또 다른 친구에게 C씨에게 범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며 “당시 B양의 집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0.2초 분량의 동영상도 함께 전송했다. 당시 A양의 상황과 범행 장소를 특정할 결정적인 증거”라고 설명했다. A양과 친구의 대화는 성범죄를 당한 직후인 1월 17일 오전 5시30분부터 같은 날 낮 12시까지 이어졌다.

해당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A양이 “나 진짜 무서웠어. 꿈 아니야. 진짜 아프고. 너무 무서워”란 호소가 잇따라 적혀있었다. A양은 친구에게 “그때 아저씨(가해자) 왜 이러세요 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라고 묻는 내용도 있었다. A양은 B양의 집에서 성범죄를 당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B양이 방에서 자는 모습이 담긴 0.1초 분량의 동영상과 이불을 촬영한 0.1초 분량 동영상을 2차례에 걸쳐 친구에게 보냈다.

유족 “가해자 계획범죄 의심…죗값 치러야”

지난달 19일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자 A양의 친구는 “증거를 잘 챙기라”는 취지로 답한 뒤 B양의 집에서 나오라고 재촉했다. A양은 포털사이트로 성범죄 관련 내용을 검색한 듯 “꿈이 아니고 진짜였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음”이라며 당황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석민 회장은 “A양은 성폭력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였으나 그 충격을 잊고 살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며 “하지만 더딘 수사와 또 다른 피해자인 친구 B양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을 포함한 사건 전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부탁드린다”며 “만약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 이유와 책임이 친족 성폭행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계속 동거하게 한 국가와 사회에 있으니 즉시 아동 관련법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A양의 아버지(49)는 “딸이 성범죄를 당하기 전인 1월 초중 4차례에 걸쳐 B양 집에서 자고 온다고 묻길래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B양이 범행 후 닷새 뒤에 ‘우리 집에서 자고 가’란 문자를 딸에게 보냈다. C씨가 계획적으로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전 국민을 상대로 ‘오창 여중생 재판 및 입법 100만 탄원서’ 참여운동도 전개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