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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선 폭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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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메시지는 명쾌했고, 유권자의 감정 이입은 어렵지 않았다. 2002년 불어닥친 ‘병풍’(兵風) 의혹은 대선판을 뒤엎었다. 당선이 유력했던 당시 야당의 이회창 후보는 부정한 방법으로 아들의 병역을 면제시켰다는 의혹 앞에서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끝내 입증되지 않은 의혹이었지만 현역 장병들과 예비 장병들, 그리고 상당수가 예비역이었던 그 부모들의 분노를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병역 브로커’ 김대업씨를 앞세운 당시 집권당의 폭로전은 대성공을 거뒀고, 노무현 후보는 역전극을 일궈냈다.

톡톡히 재미를 본 그들은 2007년 대선 때 또 한 번 같은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른바 ‘BBK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명박 당시 야당 후보에게 파상 공세를 가했다. 하지만 영광은 재연되지 않았다. 일반 유권자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복잡한 전문 용어들이 난무했던 그 경제 비리 의혹 사건은 너무 어려웠다. 즉자적으로 분노할 만한 이해 관계자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이 후보는 의혹만으로 낙마시키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존재였다. 설사 그가 비리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유권자가 넘쳐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 사주 의혹은 어떻게 전개될까. ‘병풍’ 수준의 파괴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검찰총장의 검찰권 사유화’가 병역 비리 의혹에 준할 정도로 유권자에게 직관적인 충격을 줄지 불분명하다. “세 살짜리 애들도 안 할 일”이라는 야당 해명대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는 점, 당내 경선 과열을 사안 촉발의 근원으로 볼 법한 정황들이 있다는 점도 파괴력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윤석열 검찰’이 여당을 비판하면서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절차적 정의’와 직결되는 내용이라서다. 윤 전 총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내로남불’ 비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겨누게 된다면 전투력 약화 또는 상실이 불가피해진다. 더구나 지금의 윤 전 총장은 2007년의 이명박 후보처럼 독보적 존재가 아니며, ‘공정’에 민감해진 유권자들로부터 ‘묻지 마 지지’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백척간두에 선 그는 진일보할까, 추락할까. 분수령이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