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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미라클 노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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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노오력’이란 말이 등장한 게 5~6년 전이다. 2030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단순히 ‘노력’을 강조하는 데서 나아가 툭하면 개인의 의지 부족을 탓하는 윗세대를 비꼬기 위해 만들었다. 이는 ‘헬조선’ ‘수저계급론’ ‘N포세대’ 등 일련의 청년 좌절·세대 갈등 관련 신조어의 연장선이다. 그간 『노오력의 배신』 『노오력하지 않아도 잘되는 사람에게는 작은 습관이 있다』 등의 책이 나왔다.

노오력이 싫은 젊음은 얼마간 치열함에 냉소했다. 안그래도 고령화에 떨고 있는 기성세대가 사회의 생산성·활력 저하를 우려했지만, 청년들은 이를 비웃듯 ‘힐링(치유)’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 만족)’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에 차례로 열광했다. 아예 ‘플렉스(flex)’를 표방하며 과시 소비에 집중하는 부류도 생겼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는 MZ세대를 위한 시간관리 앱이 인기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는 MZ세대를 위한 시간관리 앱이 인기다.

냉소의 이면에 성장 정체와 양극화가 있다는 건 이미 구문이다. 뾰족한 해결책 없이 반복되는 분석이 무슨 소용인가. MBC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 속 중소기업 사원 신한수(김남희 분)는 “멍을 때리나 술을 때리나 제 마음 아닌가요? 퇴근했는데”라며 선배의 일상 개입을 차단한다.

온라인 공간에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TMI(Too much information·정보 과잉)’ 등 상대를 외면하는 표현이 난무하는 배경에는 ‘어차피 그 무엇으로도 지금보다 나아질 방법은 없지 않나. 도움 안 되는 참견은 사절’이라는 청년 세대의 절망적 현실 인식이 있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는 MZ세대를 위한 시간관리 앱이 인기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는 MZ세대를 위한 시간관리 앱이 인기다.

그렇다고 절망을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누군들 시대와 환경을 잘못 타고나고 싶었겠냐는 말이다. 정부의 ‘무조건 집값 하락’ 방침에 따라 당장 은행 대출이 막힌다는 소식에 안 그래도 위험 수위인 2030 분노가 폭증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끝나지 않는 코로나까지. 지난달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20대·여성·저소득층의 우울·불안 지표가 유독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2016년 국내에 출간된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이 최근 급속히 주목받는 건 더는 냉소로도 안 되겠다는 MZ세대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비친다. 새벽 4~6시에 기상해 운동·독서·어학공부·재테크나 명상 등의 자기계발 ‘루틴(시간표)’을 짜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인증하는 게시물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았다. 미라클(기적) 실현 수단으로 노오력을 다시 전면에 소환한, 일종의 현실 직시다. 이에 비하면 최근 40대 이상에서 유행하는 ‘20대 때 사진 공유’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현실 외면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20년 전에도 분명 ‘아침형 인간’ 신드롬이 있었다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