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대학생이 저격한다

청년들 평등한건 취업난·주거불안뿐…총리님, 대책 뭡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녕하세요, 김부겸 국무총리님.
지난달 26일 주재하신 청년 특별대책 브리핑 잘 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정책을 두고 "간담회, 연석회의, 정책협의를 통해 청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고 평하셨더군요.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보도자료를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의문이 많이 생겨서 이렇게 중앙일보 홈페이지 '저격' 시리즈를 통해서나마 이번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 혹시라도 의심은 마세요. 저는 어느 당이나 단체 소속이 아닙니다. 일베 유저도 아니고요. 진짜 일반 학생이니까요.

관련기사

우선 고용 대책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청년들의 미래 도약을 지원한다며 청년을 고용하는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대기업·금융사·공기업 채용 확대를 위한 TF를 만드는 등 여러 일자리 정책을 내놓으셨지요. 묻고 싶습니다. 이 방안들이 정말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통계는 물론이요 주위만 둘러봐도 우리 경제 잠재력이 낮아지는 게 보이는데 어떤 기업들이 일시적인 세제 인센티브 1000만원을 받겠다고 채용을 늘리고 싶어 할까요.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인사 적체가 심한데 현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늘었고 대부분 적자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연 채용을 늘릴 여력이 있을까요? 다르게 여쭤볼까요.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공기업이 억지로 채용을 늘리는 게 청년의 미래를 위해 정말 필요한 걸까요?

취업난·주거불안…공평한 출발선 위의 청년들

둘째로 복지입니다. 청년세대의 격차 해소와 자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장학금을 확대하고, 월세 지원 같은 주거정책, 군 제대와 동시에 일정 자산을 형성하도록 돕는 정책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하게 여기시겠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 요즘 청년들은 아주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먼저 청년들은 공평하게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습니다. 다음으론 부동산 얘기입니다. 설령 좁은 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청년이라 해도 천정부지로 솟은 수도권 집값 앞에서 근로소득의 평등함을 느낍니다. 직장에서 조금 더 벌고 덜 벌고 간에 부동산 앞에 서면 다 의미 없는 차이가 돼버리거든요.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8월 26일 '제4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주재했다. 세금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대책을 쏟아냈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뉴스1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8월 26일 '제4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주재했다. 세금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대책을 쏟아냈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뉴스1

이 정권 분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시죠. 아마 전국 집값 상승률은 OECD 평균 상승률 7.7%보다 낮은 5.4%인데, 그 수치를 언급하지 않고 왜 이번 정권 들어 껑충 뛴 수도권 집값을 말하느냐고 서운해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이건 자기 꼬리를 무는 이야기인데요.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 좋은 일자리가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 소득이 높은 일자리가 많고, 소득이 높은 일자리를 얻어야 신용등급을 조금이라도 높여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하는 부동산 투자)을 통해 통근권에 집을 살 수가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내 집 마련의 꿈은 저만치 멀어진 상황입니다. 부동산값 잡겠다고 내놓은 대출 제한 이야기까지 하면 정말 답이 없으니 그건 이번 이야기에서 빼기로 하지요.

중증 환자에 자양강장제 주는 대책

네, 김부겸 총리님. 청년들은 지금 이렇게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고, 집을 사기를 바라지만 도저히 살 수 없는 모순된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이 모순은 일자리를 구하고 자기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싶은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체감하는 이야기인데 이번 청년 특별대책에서 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당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감히 비유컨대 내놓으신 격차 해소와 자립을 위한 정책들은 중증 환자에게 자양강장제를 주는 것과 같은 처방입니다.
마지막으로 군 얘기를 할까 합니다. 군 장병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한다며 전역할 때 정부지원금 250만 원과 연 12만 원의자기 계발비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셨죠.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잠시 말씀드릴게요. 저는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만 2년 동안 생활했습니다만 모 탄약창 부대를 방문했을 때 그곳 경비 중대 병사들이 끔찍하게 생활하는 것을 며칠 동안 경험했습니다. 그곳에는 몸이 성한 병사가 없었습니다. 인력이 부족해서,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상하지 않으면 적어도 이틀에 한 번 높은 경사의 산을 두세 개씩 오르는 경계근무에서 제외해주지 않는다더군요.

총리님, 그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의 목소리도 들어보셨나요? 정부지원금 250만 원과 자기 계발비 연 12만 원이면 군대에서 반 불구가 된 병사들의 당당한 자립, 도전에 도움이 될까요? 제가 보기엔 전혀 아닐 것 같은데요. 인구절벽으로 이제 군인력 부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몸을 다쳐서 오는 곳이 군대인데 요즘은 현역 판정 기준을 낮춰서 웬만한 질병으로는 면제판정을 못 받는다고 하네요. 군대 가서 다쳐 오는 청년들과 아픈 몸으로 군대에 끌려가는 청년들, 이대로 괜찮을까요? 일제 말기인 1945년 징병률 90%보다 높은 2020년 대한민국 91%의 징병률은요? 총리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방안을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김부겸 총리가 행자부 장관이던 지난 2017년 대구 스마트벤처캠퍼스를 방문해 청년 창업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다. [중앙포토]

김부겸 총리가 행자부 장관이던 지난 2017년 대구 스마트벤처캠퍼스를 방문해 청년 창업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다. [중앙포토]

징병률 91%는 당연한가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내놓으신 대책들은 모두 이렇게 하나하나 청년 문제의 본질에서 저만치 비켜나 있습니다. 보도자료에 쓰여있는 '청년 누구나 동등한 삶의 행복을 향유할 기회 보장'이라는 문구를 읽는 제 낯이 다 뜨거워지는 이유입니다. 도대체 두루 들으셨다는 청년들 목소리는 어느 나라 청년들 목소리인가요? 설마 청년 민주당원들 몇몇의 얘기를 슬쩍 들어보시고 청년들 의견을 경청했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물론 이번에 발표한 지원안들이 청년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런 정책들로 '청년 누구나 동등한 삶의 행복을 향유할 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하면 그건 이 치열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청년들을 기만하시는 겁니다. 힘든 청년들에게 돈 몇백만 원 쥐여주자는 생각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손쉬운 정책 말고 정부가 시행해야 하고 정부만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을 내주시고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긴급한 사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총리님 위에 계신 그분께도 꼭 전해주세요. 청년 특별정책에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전혀 충실하게 반영돼있지 않다고요.

진심으로, 김영산 올림

  대학생 김영산

대학생 김영산

※'나는 저격한다'는 2030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고정 필진 외에도 참여를 원하면 형식에 맞춰 원고를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