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임건순이 저격한다

"무당식 '뇌피셜'로 혹세무민…김어준, 무당의 자리로 가라"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0:01

임건순 동양철학자

나는 저격한다’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고대 중국 전국시대 초기 최강국이었던 위(魏)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위나라 성세를 만든 위문후라는 군주가 있었는데 그는 인재를 사랑한 왕이었다. 그의 휘하에는 서문표도 있었다. 위문후는 군사적 요충지 업(鄴) 땅에 서문표를 파견했다. 서문표가 부임해보니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성안이 한산하고 왕래하는 사람이 적었으며, 민심도 좋지 않았고 백성들 얼굴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관련기사

서문표가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장로가 말했다. "강의 신 하백(河伯)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업의 삼로(三老·관리)와 아전(하급 관리)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갑니다. 거둔 수백만 전 중에서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데 20만~30만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 딸 중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으면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데려갑니다. 10여 일 뒤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을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

신 모신다며 백성 괴롭히는 무당

무당들이 하백을 모신다며 해마다 마을의 딸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딸 가진 집들은 큰 무당 눈에 띌까 두려워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을 갔다. 갈수록 사람이 줄고 가난해지고 있었지만 무당들은 계속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서문표는 장로들에게 말했다.

“하백을 위해 신붓감을 바칠 때 나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소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부로(나이든 어른)가 모두 모였고, 구경하러 온 백성이 2000~3000여 명이었다. 두령 무당은 이미 일흔이 된 늙은 여자였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너라. 아름다운지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다.”

무당 제자들이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서문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무당과 삼로와 부로들에게 일렀다.
“이렇게 못생겨서야 하백이 기뻐하겠소?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직접 하백에게 가서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보내드린다고 전하시오. ”

곧바로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했지만 서문표는 개의치 않았다 “무당 할멈이 어째 오지 않고 이렇게 지체한단 말인가? 제자들이 대신 가서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군사를 시켜 제자인 새끼무당 하나를 강물에 던졌다. 조금 있다가 또 말했다. “제자란 무당도 어찌 이리 시간을 허비하느냐 이렇게? 다시 제자 하나를 보내 하백에게 사정을 전하도록 하라!” 서문표가 입을 열 때마다 제자가 한명씩 강으로 던져졌는데,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문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당과 제자들이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삼로들께서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라”며 이번엔 삼로를 강물 속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들을 지목해 한 사람씩 강물에 던져버렸다. 겁에 질린 이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 위에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그 이후로 업 땅의 아전과 백성들은 다시는 하백을 위해 신붓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도망쳤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실린 일화다.

중앙집권 과정에 국가권력과 지방 토호 기득권과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볼 수도 있다. 혹은 전국시대 초기니 국가건설 중 계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다란 사회모순과 백성의 고통 뒤에는 주동자와 가담자, 방관자가 있다는 과학에 가까운 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주자이던 2017년 3월 팽목항을 찾아 추모 방명록에 '고맙다'고 써서 논란이 됐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주자이던 2017년 3월 팽목항을 찾아 추모 방명록에 '고맙다'고 써서 논란이 됐다. [중앙포토]

망자 권위로 권력 얻는 한국사회 

지금 한국사회는 어떨까. 지금 한국사회에는 귀신과 망자, 초자연적 존재의 권위를 빌어 권력을 얻고 횡포를 부리고 국민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을까 없을까. 무당이 단순히 점치고 치성 올리고 살풀이하는 개인 기복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있을까 없을까. 만약 귀신과 망자를 팔아 사람들을 속여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치에 개입하는 무당들이 있고, 그로 인해 사회가 병들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서울 광화문에 세월호 시설물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봉하에 이미 기념관이 있는데 서울 종로에 지어지고 있는 노무현 신전은 무엇인가? 전국의 위안부 소녀상에 절하는 동안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가여운 아기는 피멍 들고 내장기관들이 파열되어 숨을 거두었다. 인간들이 그저 귀신과 토템에 머리 조아리니 산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상징에 목을 매면 늘 실제는 소외되고, 귀신이 주인이 되면 산 사람들은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이 먼저일까, 아니면 귀신이 먼저일까? 문재인 정권 들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데, 과연 그런 일들이 우리가 비극을 상징하는 토템과 금기를 섬기는 일과 무관한 걸까?
이쯤에서 꼭 김어준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에 패배하자 개표부정 음모론을 주장하며 소위 'K값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세월호 음모론을 비롯해 아무 근거없이 무당식 '뇌피셜'로 혹세무민하는 중심에 늘 김어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방송 권력을 움켜쥔 그는 잘못이 명백한 조국·윤미향에 대한 일방적 편들기, '대구 코로나' 등 지역 혐오성 발언으로 열심히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는 방송인일까, 언론인일까, 정치인일까. 그의 방송에 좌우,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굽신거리며 출연해 그에게서 검증을 받는 걸 보면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싶다. 정치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고, 실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는 정치인이다. 보통 정치인이 아니라 이해찬과 함께 실제 여권의 중심축 아닌가? 차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역시 그의 낙점에 달린 것 아닌가?

그런데 어째 김어준은 정치인을 넘어 사실 그저 무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거와 합리, 과학과 팩트를 기반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촉과 감, 뇌피셜에 기반해 현실을 진단하고 팬인지 지지자인지 신도인지 모를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의 tbs '뉴스공장'을 청취하며 접신의 상태에서 그의 지령을 듣는 걸 보면 그가 무당이라는 게 결코 과언이 아니다. 무당 김어준이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기능하며 사회에 큰 힘을 미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고.

'그날, 바다' 무대인사에 제작자로 오른 김어준과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배우 정우성, 김지영 감독(왼쪽부터).

'그날, 바다' 무대인사에 제작자로 오른 김어준과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배우 정우성, 김지영 감독(왼쪽부터).

근대국가는 정교분리가 기본

무당이란 존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기복과 구복의 영역은 누군가에겐 필요할 수 있고, 개인 대 개인 간 서비스와 영업이라면 무당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치에 개입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근대국가는 정교분리와 우선이고 종교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음은 헌법에 천명된 것이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그리고 세월호 사건 후 한국에 무속의 기운이 팽배해졌다. 최근엔 한강에서 실종됐던 의대생 손정민 사망 사건을 둘러싸고 의혹을 밝혀달라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건 내겐 시위가 아니라 굿판으로 보였다. 문제 해결 능력을 겨루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성과 억울함을 사회적으로 인증, 인정받으려 하고 그걸 통해 지대를 구축하려는 사람들. 자주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면서 점점 우리 사회는 무속의 기운이 팽배해지고, 이 때문에 사회에는 퇴행의 기운이 더 자욱해진다. 필자만의 뇌피셜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당은 무당의 자리로 보내주고, 종교인은 종교인의 자리로 보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언제까지 무당이 언론인으로 행세하며 사회의 공기와 전파를 낭비할 뿐 아니라 온갖 폐해를 만들어내는데, 심지어 세금으로 이를 지원해줘야 할까.

정치는 정치인이, 보도와 논평은 언론인이, 무당은 개인들의 구복에만, 이렇게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사회는 '김어준 코리아'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아무런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고 애초에 어떤 검증도 없이 권력을 쥔 사람의 정치적 전횡을 지켜보기가 괴로운데 김어준 코리아가 언제까지 갈지, 그리고 한국 사회 수준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궁금하다. 한국에도 서문표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하는 것이 아닐까. 과격한 방법이라도 써서 무당들을 세속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리더 말이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