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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엘리가 저격한다

5개월전 황당 '여사친'…이재명 지사님 청년은 남성뿐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엘리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안녕하세요. 더불어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님.
저는 후보님께서 지난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언급한 ‘여자 사람 친구’, 그러니까 여사친 중 한 명입니다. 제가 아무 이유 없이 후보님의 여사친을 자칭하고 나선 것은 아니옵고, 갑작스럽게 제 SNS 피드(feed)에 여러 차례 올라온 리트윗 때문입니다. 6000번 넘는 리트윗이 되다 보니 저한테까지 닿은 것이지요. 제가 가끔씩 들여다보는 2030 여성들이 주로 찾는 한 커뮤니티에서도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더군요. 제목부터 지나치게 자극적이기에 도저히 클릭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제목을 저렇게 지어야 트래픽(traffic)이 폭발적으로 느는구나 싶어 한 수 배우기도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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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말씀드리자면, 그 문제적 게시물의 제목은 ‘이재명 역대급 여혐 발언’이었습니다. 링크를 따라가보니 최근 발언도 아닌 무려 4개월도 더 전에 인터뷰한 캡처 장면이라 살짝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짤’만 보고서 저는 따끈따끈한 어제저녁 뉴스의 캡처본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후보님, 이거 아십니까. 요새 캡처 기술이 좋아서 짤은 시간이 지나도 헐지 않습니다. 게시글 작성 날짜를 확인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죠. 저도 깜빡 속았으니까요.

자, 그럼 그 문제의 ‘여사친’ 발언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지난 4월 JTBC 뉴스입니다. “지금 청년 세대는 기회를 얻을 수가 없는,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동료, 친구들 또는 여자 사람 친구와 격렬하게 경쟁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씀한 바로 그 부분입니다. ‘여자 사람 친구’라…저는 이 워딩을 유력 대선주자 입에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워딩이 주로 사용되는 맥락은 보통 다음과 같거든요.

여자를 배제한 '여사친'발언 

“나 오늘 민주랑 둘이 영화 보러 간다. 야야, 뭔 소리야. 썸 타냐니… 걔 그냥 여자 사람 친구야.” “힘찬이가 이삿짐 나르는 거 도와주러 온대. 애인이냐고? 아니 그냥 남자 사람 친군데?”
다시 한번 뉘앙스를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쌍방에 이성적인 텐션(긴장감)이 전혀 없는, 인간의 형상을 빚고 있는 자와의 친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의 담백한 이성 관계를 뜻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 단어가 '여권 대선 주자들의 청년 공략'에 불쑥 튀어나와 버린 겁니다. 저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다급히 초록색 창을 켜 청년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죠. 혹시 제가 그 뜻을 잘못 파악하고 있나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청년의 범위[편집]
대한민국 통계청은 만 15~29세까지의 남녀 모두를 청년으로 보고 있다.[2] 대한민국 청소년 법은 9~24세 남녀 모두로 대상을 정한다.[3] 대한민국에서 정당은 19~45세의 당원을 청년당원으로 규정한다.[4] 2013년 출범한 청년위원회는 20세~39세까지의 남녀 모두를 정책대상으로 정한다.
다행히도 제가 인지하고 있던 정의가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 정책 대상도 청년 법상 만 19세 이상 ~ 만 34세 이하까지(지자체별로 조금씩 상이)더군요.

 지난 4월 30일 여권 대선 주자들의 청년 공약을 다룬 뉴스룸 장면. [JTBC 캡처]

지난 4월 30일 여권 대선 주자들의 청년 공약을 다룬 뉴스룸 장면. [JTBC 캡처]

이런 뜻을 다시 한번 환기한 후 굳이 지난 일을 다시 묻습니다. 앞서 언급된 ‘청년 세대’에 ‘여자’는 왜 제외된 거냐고요. 후보님에게 ‘청년’의 주체는 남성으로만 한정되는 것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왜 굳이 마지막에 ‘여.사.친’을 따로 언급하신 건가요? 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남사친’은 어디로 휘발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혹시 아예 그 언급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미 설정된 디폴트 값을 다시 한 번 더 언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냉수(冷水) 앞에 ‘찬’이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여기서 저는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어법은 패권을 다루는 투쟁이다…정치가나 관료가 말하는 비정치적인 언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가 떠드는 언어, 일상의 수다, 그것이 패권을 장악한 어법이다’는 말로 끝을 맺는 대목 말입니다. 언어 프레임이 실제 권력과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잘 보여주고 있는 페이지이죠. 요새 2030 여성들이 나이든 어르신들 보이게 ‘그깟 한 마디’, 혹은 ‘작은 표현 하나’에 죽자사자 달려들어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대변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 작은 성차별적인 표현 하나가 사람들 의식 속 어마어마한 깊이의 크레바스(간극)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죠.

단어 하나에 달려든다고? 

시대가 참 불편하게 변하고 있죠? 예전에는 그냥 넘어가던 말 한마디, 표현 하나에 물음표를 달고 달려드니 말입니다. 왜 여자 교사는 그냥 교사가 아닌 여(女) 교사로 불리나요? 왜 여자 경찰은 그냥 경찰이 아니라 여경이며, 여자 의사는 왜 그냥 의사로 불리지 않고 여의사로 불리죠? 하나의 직업 안에서 두 개의 다른 계층을 나누는 것인가요? 이런 질문들, 전에는 제기되어 본 적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비단 우리 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어 문법에서 여성형 명사, 남성형 명사, (때에 따라) 중성형 명사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어죠. 그러나 제가 후보님의 언어 사용에서 본 것은 문법적인 성(Gender)이 아닌 생물학적 성 (Sex)이었습니다. 후보님께서는 차별어 중 하나인 성별어를 사용하여 ‘청년’ 계층에서 ‘여성’을 따로 떼어 ‘여자 사람 친구’라고 지칭하신 겁니다.
별것 아닌 시시한 말꼬리 잡기로 보이시나요?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사회학자가 인정한 바와 같이 언어와 사회화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언어는 필연적으로 권력과 계층의 문제를 반영, 내포하고 있고요. 특정 단어와 표현에 사회 및 경제적 지위가 내포된 것도 이와 같은 언어 사용의 특성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우연히 보게 된 게시물이 후보님께서 뱉어낸 ‘최초’의 문제적 발언이었다면, 저도 이렇게 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살다 보면, 말하다 보면, 의도와 다르게 말실수 할 때도 있고, 습관적으로 어떤 단어나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여자를 내려보는 불편한 시선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보님의 발언 중 여성을 향한 차별을 담고 있는 차별어 사용을 목격한 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후보님과 연관된 특정 의혹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담당 PD와의 통화할 당시도 "큰별 피디, 혹시 여성분인가 했더니 아니군요"라며 PD라는 직업 자체를 존중하기보다 굳이 성별 확인을 하려 들거나, 또 과거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라고 알려진 사람을 향해선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로 칭하는 등 사회적 직업과 계층에서 생물학적 성(Sex)을 따로 분리하여 사용했던 사례가 있으셨죠.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보다 훨씬 더 똑똑하시고 견문이 넓으실 후보님께서 이와 같은 언어적 계층 나누기의 효과를 모르고 계신다고, 언어 프레임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같은 그룹 안에서 성별로 인한 계층 나누기로 여성 유권자를 더는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청년’ 범위에 ‘여.사.친’으로 따로 구분 지어진 2030 여성도 포함해 한데 아울러 주심을 요구하는 게 큰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