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박범계의 홍보 과욕, 인형장관·우산차관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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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7일 충북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법무부 브리핑에서 강성국 차관(가운데)에게 무릎을 꿇고 우산을 씌워준 보좌진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7일 충북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법무부 브리핑에서 강성국 차관(가운데)에게 무릎을 꿇고 우산을 씌워준 보좌진의 모습. [연합뉴스]

법무부의 ‘무릎 꿇고 받들어 우산’ 의전(儀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를 맞이하며 정부의 인권 옹호를 과시하려다가 되레 하급 직원 인권을 천시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지난 26, 27일 법무부 장·차관은 연거푸 인천공항 입국장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아 홍보에 나섰다. 정작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 작전을 수행한 외교부와 국방부 등 ‘미라클 작전’ 성공 주역은 한 명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지난 27일 오후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강성국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및 가족 초기 정착 지원 계획’을 브리핑하던 중 사고가 터졌다.

양복 차림의 법무부 직원이 10분가량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받쳐 든 모습이 공개됐다. 중앙일보가 정부 KTV와 각 방송사의 당시 현장 영상을 종합한 결과 상황은 다소 미묘했다. 아프간인 조력자와 가족을 나눠 태운 버스 13대가 이날 낮 12시를 지나 인재개발원에 속속 도착했다. 강 차관은 낮 12시40분쯤 정문 앞 도로에 설치된 연단 앞에서 브리핑을 준비했다. 브리핑 전까지는 해당 직원이 연단 오른쪽(강 차관 왼쪽)에 쪼그려 앉아 우산을 들었다. 브리핑 시작 무렵 강 차관 뒤로 가서 쪼그린 채 우산을 받쳤다.

과잉 의전 논란에 대해 법무부는 “당시 현장에 사진·영상 기자들의 (직원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취재 협조 요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영상에도 브리핑 시작 순간 “더 앉으세요”라는 현장 취재진 목소리가 나온다. 그 순간 강 차관도 직원을 돌아봤다. 또 다른 법무부 관계자가 “어깨 아래로 유지해. 안 나오게”라며 해당 직원 소매를 당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직원은 빗물 젖은 아스팔트에 두 무릎을 꿇고 브리핑 내내 우산을 들었다. 강 차관은 결국 사과했다.

여당 3선 의원 출신인 박범계 장관의 과한 자기 홍보 욕심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다. 박 장관은 지난 26일 오후 정부 대표로 인천공항에 나가 인형을 들고 조력자 가족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지난 26일 방역복을 입은 법무부 관계자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들에게 인형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법무부는 입국 장면을 취재하는 기자단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의 ‘인형 전달식’을 촬영해 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캡처]

지난 26일 방역복을 입은 법무부 관계자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들에게 인형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법무부는 입국 장면을 취재하는 기자단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의 ‘인형 전달식’을 촬영해 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캡처]

법무부 일부 관계자는 “박 장관이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맞이하며 아이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것을 촬영하지 않으면 공항 행사 전체에 대한 취재를 불허할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해 취재진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박 장관은 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전임 장관들과 비교해 너무 자주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아니냐”는 뒷말을 들었다. 국민과 소통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 박범계의 주가를 높이려는 ‘쇼통’(보여주기식 소통)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박 장관도 지난 2월 24일 “나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수사팀에 대한 합동 감찰 결과 발표 때는 “알맹이 없이 기존의 무혐의 판단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브리핑인데 왜 굳이 법무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발표 때도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법무부에서 세 차례 근무했던 김종민(사법연수원 21기)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법무부에서 검사들을 다 쫓아내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로 채운 결과”라며 “행사가 법무부 차원의 기획인지, 청와대 총감독하에 했는지 확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법무부와 검찰의 뿌리 깊은 과잉 의전 문화가 이번 일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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