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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엔 '탈레반 통치' 안 겪게한다…아프간인 391명중 절반이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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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아프간인 378명이 26일 생사의 경계를 넘어 9000km 떨어진 한국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병원·직업훈련원·대사관 등에서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을 도왔던 현지 조력자들이다.

이들을 태우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공군 다목적 공증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는 이날 오후 4시 24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지난 22일부터 5일간 긴박하게 진행된 ‘미라클(miracle)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 378명. 이들은 경기도 모처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린 뒤,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갖는다. [사진공동취재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 378명. 이들은 경기도 모처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린 뒤,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갖는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초 아프간인 조력자 중 한국행을 택한 이송 대상자는 총 391명이었다. KC-330의 경우 탑승 가능한 적정 정원이 330여명으로, 391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없어 선·후발대로 나눠 이송 작전을 진행했다. 선발대인 378명은 이날 오전 4시 53분쯤 KC-330에 탑승해 먼저 한국에 도착했고, 나머지 13명은 같은날 오후 7시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후발대 13명을 태운 공군 수송기 C-130J는 중간 급유가 필요한 탓에 약 17시간 비행해 이튿날인 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선발대 378명 인천공항 도착, 곧장 PCR 검사 

지난 25일 카불공항에서 파키스탄 중간 집결지인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해 있는 아프간인 조력자들. 한국행을 택한 391명 중 선발대 378명이 26일 새벽 4시 53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출발해 이날 오후 4시 2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군 제공]

지난 25일 카불공항에서 파키스탄 중간 집결지인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해 있는 아프간인 조력자들. 한국행을 택한 391명 중 선발대 378명이 26일 새벽 4시 53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출발해 이날 오후 4시 2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군 제공]

외교부와 방역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도착한 378명의 아프간인은 송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내 별도의 시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이후 다른 공항 이용자들과 분리되는 별도의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와 방역 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에 가서 대기한다.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6~8시간 가량 머물 것으로 보인다.

검사 결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이들은 방역당국이 즉시 생활치료센터나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이송할 예정이다.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은 충북 진천에 위치한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 2주 간의 격리 기간을 포함해 1~2개월 간 한국에서의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 등을 받게 된다.  

공군 특수부대 요원이 지난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 현지 조력자의 자녀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모습. [공군 제공]

공군 특수부대 요원이 지난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 현지 조력자의 자녀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모습. [공군 제공]

다만 이들 중 몇 명이 한국에 정착하길 희망하는지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 분들이 입국해서 불편함이 없도록 잘 조치를 해야 될 것이고, 이후에 이분들이 (한국 정착 등의) 삶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종합 계획을 또 세워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 폭정' 대물림 피하려 한국행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조력자 중 절반 가량인 190여명은 10세 이하의 영유아 및 아동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젋은 부부들이 자녀를 데리고 아프간 탈출을 감행했다는 의미다. [뉴스1]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조력자 중 절반 가량인 190여명은 10세 이하의 영유아 및 아동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젋은 부부들이 자녀를 데리고 아프간 탈출을 감행했다는 의미다. [뉴스1]

이번에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391명 중 절반 가량인 190여명은 10세 이하의 영유아 및 아동에 해당한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송 대상자 중 생후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신생아가 3명이고, 5세 이하 영유아는 100여명, 6~10세 아동 역시 80여명이다.

유아와 어린이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들 중에선 상대적으로 젊은 부부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과거 한국 대사관 등 기관들과 협조해 일했던 분들이 기본적으로 다 젊은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신생아의 경우 항공기 탑승 자체가 걱정됐지만, 현지에서 의료진 검사 결과 문제 없다는 판단 하에 모두 탑승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부모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미성년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탈레반의 폭정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 세대로 볼 수 있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무슬림 반군조직 연합체로 구성된 라바니 정부를 무너뜨리며 집권한 바 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직후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다 미국의 침공을 받아 퇴출됐다.

아프간을 탈출해 한국행을 선택한 A씨는 과거 2년 4개월 간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에서 일했다. 그는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내 가족과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떠나야만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아프간을 탈출해 한국행을 선택한 A씨는 과거 2년 4개월 간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에서 일했다. 그는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내 가족과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떠나야만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이번에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중 미성년자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은 청소년기나 갓 성인이 된 뒤 탈레반 정권을 직접 겪었고, 이후 한국 기관에서 재건 사업에 직접 참여하며 민주주의도 경험한 세대로 추정된다. 이들이 고국을 떠나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도 어린 자녀들만은 탈레반 치하의 참혹한 생활을 대물림하지 않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게 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에서 2년 4개월간 근무하다 이번에 한국에 입국한 아프간인 여성 A씨는 “남편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며 “내 가족과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프간을) 떠나야만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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