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미라클, 2만㎞ 날아 아프간인 391명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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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에서 두 개의 심장과도 같았던 바그람 한국병원과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뒤 두 건물을 폭파해버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했던 아프간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제발 구해달라”는 이들의 외침에 대한민국이 응답했다.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와 직계가족 391명(76가구)을 태운 비행기는 2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작전명은 ‘미라클(miracle·기적)’. 국방부 당국자는 “목숨이 담보되지 않은 가운데 사선을 넘어 새로운 선택을 한 분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의미와 아프간까지 약 2만㎞를 왕복해 적진에 들어가는 작전은 우리 군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 성공적 수행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카불 민간공항 폐쇄되자, 군 수송기 투입

한국정부 활동을 지원해 온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가족 391명이 25일(현지시간) 카불 공항에서 중간기착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한국정부 활동을 지원해 온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가족 391명이 25일(현지시간) 카불 공항에서 중간기착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25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당초 정부는 아프간인 조력자들을 전세기 등으로 국내로 수송할 계획이었으나 탈레반이 예상보다 빨리 카불을 장악하면서 무산됐다. 카불 민간 공항이 폐쇄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군 공항뿐이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군 등은 주한미군과 협력해 군 수송기 투입을 결정했다. 외교부는 외교적 교섭을 통해 인접국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수송작전의 베이스캠프로 이용하기로 했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행을 원하는 현지인 조력자들과 계속 소통이 이뤄졌지만 이들은 카불 공항까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력으로 와야 했고, 도착한 뒤엔 공항 출입구 근처에 2만여 명이 운집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점이 난제였다. 그러다 지난 22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주재한 20개국 차관회의에서 미국이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 회사들과 계약해 버스로 공항 출입구를 통과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정부는 버스 회사와 접촉해 23일 버스 6대를 확보했다. 동시에 현지의 미군은 접선 장소 두 곳을 정해 현지인 조력자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24일 정해진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가 약속한 시간에 모인 이들을 태워 공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부가 투입한 수송기는 모두 3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한 대, 군용 수송기 C-130J가 두 대였다. KC-330은 공중 급유를 하는 ‘하늘의 주유소’ 역할과 병력 수송 및 재외국민 긴급 소개 임무 등을 위해 도입된 기종이다. 300여 명의 인원을 수송할 수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KC-330은 무력 공격 등 상황에서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C-130J도 함께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아프간 난민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

국내 이송 아프간 협력자 수용 시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이송 아프간 협력자 수용 시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수송기 세 대가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 23일. KC-330은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대기하고, C-130J가 카불 공항을 오가며 수송 인원들을 실어 나르는 방법으로 대피가 이뤄졌다. 1진 26명은 24일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넘어왔고, 나머지 인원도 25일 오후 수송을 완료했다.

당초 정부가 파악한 수송 인원은 427명인데, 실제 대피가 이뤄진 건 391명이다. 나머지 36명은 현지 잔류를 선택했거나 제3국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중엔 신생아 3명 등 5세 미만의 영유아가 100여 명이나 됐다. 이들은 KC-330과 C-130J에 나눠 타고 한국으로 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우리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가니스탄 직원과 가족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지난 24일 1진으로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한 아프간 조력자들은 한국에 고마움을 표했다. 카불의 한국대사관에서 2년4개월간 일한 여성 A씨는 두 아들, 남편과 함께 한국행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한국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내 가족과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프간을 떠나야만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카불 대사관에 근무했던 B씨는 “외국을 위해 일한 나와 내 가족들이 탈레반에 붙잡히면 정말 위험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아프간인 434명도 특별체류 허용

이들은 난민이 아닌 ‘특별 공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수년간 주아프간 한국대사관과 코이카(KOICA) 등에서 근무한 공로가 인정돼서다. 이들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해 2주간 자가격리한다. 이후 1~2개월간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교육과 안내 등이 진행된다.

한편 법무부는 국내에 체류하는 아프간인 434명에 대해 현지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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