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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건 탈출, 아프간 391명 온다…의사·IT전문가·교사 등 '현지 조력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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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이 25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을 지원했던 아프간인 조력자 391여명이 26일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스1]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이 25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을 지원했던 아프간인 조력자 391여명이 26일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스1]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으로부터 신변 위협을 받아온 아프간 국적자 391여명이 오는 26일 한국에 도착한다. 당초 이송 대상자였던 427명보다 30여명 줄어든 규모다. 이들은짧게는 1~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아프간에서 한국의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을 지원해 온 현지인 조력자 및 직계가족들이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이들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진입 중에 있으며, 우리 군수송기를 이용, 내일 중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난민이 아닌 '특별 공로자'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수년간 주아프간 한국대사관과 코이카(KOICA),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지방재건팀 등에서 근무한 공로가 인정돼서다.

한국에 도착할 아프간인 조력자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지의 우수한 전문 인력으로 우리와 같이 일한 동료들이고, 현지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도 계속 교류를 이어왔다”며 “최근 아프간 상황에 따라 테러 위협에 처해 있고 우리 정부는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자 현지인 직원과 가족들의 국내 입국을 추진해왔다”고 말했다. 이들 대다수는 직업 훈련원과 병원 등에서 의사, IT 전문가, 통역사 등 전문 인력에 해당한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이들의 이송을 위해 앞서 지난 16일 카타르로 철수했던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직원 등은 지난 22일 재차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이동해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동시에 이들이 무사히 카불 공항에 도착해 이송이 시작될 수 있도록 미국 등 현지 우방국과의 협의를 이어갔다. 이와 관련 최 차관은 “군 수송기는 8월 23일 중간기착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고, 8월 24일부터 카불과 이슬라마바드를 왕복하며 아프간인들을 이송했다”고 밝혔다.

조력자 아프간인 구출 나선 세계 각국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한 이후 카불 공항은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인파로 혼잡을 이뤘다. [AFP=연합뉴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한 이후 카불 공항은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인파로 혼잡을 이뤘다. [AFP=연합뉴스]

정부가 이들의 한국 수송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직후부터였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를 비롯, 서방 진영의 아프간 재건 사업에 참여했던 현지인들은 탈레반의 협박에 시달렸고, 실제 살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 관련 기관에서 일했던 아프간 국적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 미국ㆍ프랑스ㆍ독일 등 각국은 이미 이달 초부터 현지인 조력자에게 난민 자격을 부여해 자국으로 이송해 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1만5000명이 넘는 아프간인 수용을 계획 중이다.

이에 정부 역시 한국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는 현지인들을 한국에 데려와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6일 아프간에서 마지막 한 명의 교민이 떠났고, 주아프간 대사관도 잠정 폐쇄했지만 이들을 수송하기 위한 준비작업은 계속됐다.

목숨 건 공항행 "안전 보장 불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가 이송을 추진하며 처음 집계한 현지인 조력자와 가족은 427명이었다. 사전에 e메일 등을 주고받으며 이들의 상황을 확인한 결과 탈출 시점을 24일로 정했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카불 공항에 한국 군용기가 준비됐고, 오는 26일 수송 작전이 완수될 예정이다.

이번 수송 작전에서 가장 큰 고비는 조력자들이 거주지에서 카불 공항까지 이동하는 일이었다. 탈레반은 카불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신체 수색은 물론 휴대전화까지 뒤지고 있다. 자칫 한국행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 중이라는 사실이 발각될 경우 언제든 총살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들 중 40여명은 수도 카불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탓에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한 동선이 훨씬 복잡했다.

정부는 군 수송기가 도착하기 전 제3국으로 이동시켰던 주아프간 소속 한국 대사관 소속 공관원을 다시 카불 공항에 투입하기도 했다. 신속한 수송 작전 수행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카불 시내 곳곳에 탈레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지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현지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무사히 카불 공항까지 도착하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콘보이(수송대) 등을 통해 카불 공항까지 길을 안내해주거나 안전을 보장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427명→391명, 36명은 '한국행 포기' 

탈레반 대원들이 카불 공항 근처에서 행인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탈레반 대원들이 카불 공항 근처에서 행인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송대상자의 규모는 당초 427명에서 391명으로 바뀌었다. 나머지 36명은 도중에 마음이 바뀌어 아프간 잔류를 선택했거나,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의 이송을 희망한 경우다.

한편 한국에 도착할 예정인 391여명의 아프간인들은 곧장 사전에 마련해 놓은 임시 시설로 이동해 2주간 자가 격리한다. 임시 시설은 충북 진천에 위치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1~2개월간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교육과 안내 등이 진행된다. 이와 관련 최종문 차관은 "아프간인 직원 및 가족들은 공항 도착 즉시 방역절차를 거쳐 보안과 방역 측면에서 적합한 임시숙소,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임시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들 전원에게 장기체류 비자를 발급한 이후 한국 정착을 원할 경우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에 정착할 것인지, 타국으로 재이주를 희망하는지 등을 파악할 예정”이라며 “제공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로 영주권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근처에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는 모습. [AFP=뉴스1]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근처에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는 모습. [AFP=뉴스1]

이를 위해 정부는 이들을 한국으로 이송하기에 앞서 이미 신원 조회 등의 절차를 마쳤다. 2018년 6월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제주도를 통해 입국할 당시 국민 불안이 컸다는 점을 고려, 수차례에 걸쳐 확인 작업을 벌였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아프간 현지에서 유관국과 협조해 이들의 신원을 재차 확인했고,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 도착 후에도 계속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프간인 이송과 관련) 국민이 느낄 우려가 없도록 하고, 우려가 있을 경우 이를 잘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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