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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국 눈치 보다 뒷북치는 고려대와 부산대, 부끄럽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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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심 판결 8개월만에 부산대 입학취소

당연한 결정을 질질 끌어 정의 훼손 

부산대가 어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다. 2019년 9월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입시 부정 의혹이 불거진 이후 2년 만이다. 예상된 결과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체되면서 복잡한 문제가 파생됐다. 보건복지부는 조씨의 의사 자격 취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조씨가 전공의(인턴)를 하는 한일병원도 고민을 떠안게 됐다.

조씨의 입학 취소 결정 시점은 1심 판결 전에 학교로부터 철퇴를 맞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나 정유라씨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법원이 조씨 모친 정경심씨의 입시 부정 혐의를 유죄로 처음 판결한 이후로도 8개월이 흘렀다. 만약 부산대가 앞선 사례처럼 신속히 결정했다면 의사면허 취득과 인턴 합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부산대는 입시 범죄를 당해 신뢰도가 추락한 피해자다. 혐의가 드러나자마자 분노하며 사실 규명에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겠다며 우물쭈물했다. 정경심씨의 1심 재판부조차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며 유죄 선고와 동시에 법정 구속을 결정했는데 대학은 3심까지 지켜본다고 했다.

오죽하면 지난 3월 유은혜 부총리가 “대학이 학내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일련의 조처를 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제야 허겁지겁 조사에 들어간 부산대의 모습은 초라했다. 1심 판결로 확인된 허위 문서는 한두 개가 아니고 발행 기관도 단국대·공주대·동양대·서울대·KIST에 호텔까지 망라한다. 이 모든 기관이 검찰과 법원에 허위 진술을 했다고 생각했는가. 입시부정이 낱낱이 드러난 판결문을 읽으며 부산대는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고려대도 마찬가지다. 권력자가 연관됐다고 입시 부정을 모르는 척 외면하는 행위는 수치스럽다. 대학이 꼭 지켜야 할 가치인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대학이 저자세로 눈치를 보니 정치권이 더 기세등등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유 부총리에게 고려대의 입학 취소 검토와 관련해 “교육부에서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 달라”고 요구한 게 대표적 언행이다. 법원은 여권의 샌드백이 된 지 오래다. 이낙연 전 대표까지 판결을 비난한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검찰의 증거 은폐 내지 조작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시비리는 감싸고 이를 심판하는 기관에 몰매를 퍼붓는다. 그동안 궤변을 일삼으며 조국 일가를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던 진보 진영 인사들은 우리 사회에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기 바란다. 입시부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조민씨와 함께 고려대와 부산대에 응시했다 탈락한 지원자들이다. 이들의 억울함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절차를 지연시켜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