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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론재갈법은 폭주 민주당과 침묵 대통령의 합작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변에 이어 자유언론실천재단도 반대

여당 오늘 본회의 고수, 대통령은 회피   

170여 석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안에선 절대자다. ‘언론재갈법’(언론중재법)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위한 완력 행사에도 거침없다. 민주사회에 꼭 필요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조차 거부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한발만 국회 밖으로 내디디면 전혀 다른 여론 지형이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이들도 “처리 말고 숙의하라”고 요구한다. 민주당은 사실상 고립됐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연대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권경애 변호사) 바로 그 민변이 성명을 내고 “민주당은 언론 개혁을 위한 국민의 공감대 확보를 위해 숨을 고르라”고 요구했다. 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하나 고의 중과실 사유를 예시 또는 열거해 추정하는 규정은 삭제돼야 하며 입증 책임 전환의 법리에 맞추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명엔 ‘민주당의 유례없는 입법 속도전’ ‘언론의 자유에 중대한 침해 발생’ 등의 표현이 담겼다.

군부 정권 시절 자유언론 수호 투쟁을 벌였던 원로 언론인 모임인 자유언론실천재단도 그제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며 “1987년 이후 기나긴 군부독재의 터널을 뚫고 얻어진 언론 자유에 심각한 제약과 위축 효과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언론중재법이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정치적 편의를 위해 제대로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강행 처리되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이 모임엔 민주당을 아끼는 원로들이 많다. 여권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이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이 법안을 지지할 줄 알았는데, 거기조차 이렇게 나왔으면 민주당이 그대로 밀어붙이기엔 굉장한 부담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세계 언론단체와 학계·법조계는 물론 자신들의 오랜 우군까지 반대하는데도 민주당은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밀어붙이던 힘의 관성인가, 아니면 이 법을 꼭 통과시켜야만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위헌적 조항으로 가득 찬 이 법의 최종 수혜자는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민주당 사람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이 마당에 사실상 유일한 브레이크인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가 전혀 관여할 일이 아니다”고 했는데, 소관 부처가 문화체육관광부다. ‘청와대 정부’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오만 가지 일에 관여하고 생색낼 일엔 얼굴을 내밀더니 정작 책임져야 할 일은 회피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묵시적 동의’란 말이 나오는 거다.

분명한 건 이번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민주당의 다수는 과거에 민주주의를 외쳤을지 모르나 지금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를 외쳤을지 모르나 자유 또한 훼손하고 있다. 진보와 개혁을 외쳤으나 퇴행과 반동의 세력이 됐다. 민주당의 불행이고 국민에겐 더 큰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