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기 싫은데 아버지가 왜 부르냐…숨진 80대 노모 말에 냉동보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방송된 SBS 스페셜 ‘불멸의 시대 2부: 냉동인간’편에 출연한 김정길(가명)씨. SBS 캡처

22일 방송된 SBS 스페셜 ‘불멸의 시대 2부: 냉동인간’편에 출연한 김정길(가명)씨. SBS 캡처

지난해 5월 숨진 80대 어머니를 냉동 보존한 국내 냉동인간 1호 신청자 김정길(가명)씨는 “100% 회생하거나 부활한다를 바라는 게 아니라 1%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에 기대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2일 SBS 스페셜 ‘불멸의 시대 2부: 냉동인간’편에서 “지금은 해동 기술이 없지만 일단 저렇게 보존해서 미래 의술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라며 이같이 바랐다.

“살려고 하는 의지, 이 정도구나” 냉동 보존 결정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의지를 느꼈다는 김씨는 어머니를 냉동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어머니가)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데 거기에서 막 거의 몸부림을 치셨다. 앰뷸런스가 거의 들썩거릴 정도로”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나는 아직 가기 싫은데 왜 너희 아버지는 나를 부르냐’라고, 제가 어머니랑 이렇게 오래 살면서 그런 모습 처음 봤다”며 “참 살려고 하는 의지가 이 정도구나”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개월 만에 어머니마저 보내기 힘들었던 김씨는 냉동 보존을 결정했다. 김씨는 “동생이 ‘난 반대야’라고 했다. 제 생각에는 돈 때문에 그러는 거 같았는데, ‘아버지 장례 때 보니까 이건 아니다’, ‘(어머니를) 가루로 만드는 것은 내가 용납이 안 된다’라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22일 방송된 SBS 스페셜 ‘불멸의 시대 2부: 냉동인간’편. SBS 캡처

22일 방송된 SBS 스페셜 ‘불멸의 시대 2부: 냉동인간’편. SBS 캡처

냉동 보존 계약기간, 100년 

김씨의 어머니는 사망 직후 1차 냉동 처리 후 냉동 보존용 탱크가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송됐다. 어머니의 냉동 보존 계약기간은 100년이다. 의료기술 발전 속도와 냉동 보존 환자의 재생 가능성 등이 고려된 기간이다.

김씨는 그 시간 동안 해동 기술과 혈액암 치료법까지 개발되길 빌고 있다. 현지에서 보내준 영상으로 어머니의 시신이 보존된 냉동 탱크를 확인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김씨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머니가 모스크바에 계신데, 제가 간다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여기에서 마음으로 빌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냉동 보존 연구소가 보내온 사진. SBS 캡처

러시아 냉동 보존 연구소가 보내온 사진. SBS 캡처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다. 하늘 무너져” 

김씨는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다. 저 같은 경우는 마음의 준비가 아예 안 된 상태에서 하늘이 무너졌다”며 “불효자라서 더 하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나는 무너지는 하늘을 받치고는 있겠다”며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거다”고 했다.

김씨는 “제가 속으로 어머니한테 그랬다. ‘엄마, 현대 의학의 혜택 여기까지만 해봅시다. 누가 좋은 기술을 만들어놓은 게 있는데 그걸 한번 해봅시다’”고 말했다.

“엄마 잘 잤어? 묻고 싶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는 제작진의 물음에 “엄마 잘 잤어?”라고 묻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불편한 시선…“엄마한테 허락받았니?”

김씨의 선택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반대의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일부는 그의 행동을 비난하며 죽음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라 충고했다. 그는 “엄마한테 허락받았니?”, “엄마를 얼렸어?”, “엄마는 알고 계시니?”, “누구 맘대로” 등의 댓글에 충격를 받았다고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 ‘뇌손상’ 

냉동 보전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인 전문가들은 이날 방송에서 “유리화 기술은 난자나 단세포 등 조직이 아주 작을 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억 개, 아니 수조 개의 세포가 있는 몸을 어떻게 유리화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뇌손상이라 강조했다.

케네스 헤이워스 뇌보존재단(BFF) 공동설립자는 “냉동 보존 기술이 뇌의 시냅스 연결을 잘 보존한다는 걸 보여주지 못했다. 신경 연결 부분에서 많은 수축이 일어났는데 내가 보기에 손상된 것으로 보였다”며 “그래서 난 공개적으로 냉동 보존 회원 자격을 철회했다”라고 설명했다.

영원한 삶이란 무엇일까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교수는 방송에서 “죽음이 없고 영원히 산다면 서로 따뜻한 말을 건넬 필요도 없고, 당장 출근할 필요도 없고, 사랑할 필요도 없다. 천년 뒤 만년 뒤에 해도 되기 때문”이라며 “톨스토이의 인생론에서 우리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음으로 떠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따뜻한 기억과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가졌던 인간성이 다른 사람에게 펼쳐지면서 그의 기억과 그의 존재가 영원히 각인되는 게 영원한 삶 아닐까”라며 여운을 남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