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환희 뒤엔 벅찬 숙제도 많다(하나의 독일: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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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0년 이질화 극복 최대과제/서독수준 경제향상에만 1조마르크 필요/옛땅ㆍ재산반환 요구ㆍ「슈타지」문제도 난제
『동서독은 10월3일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독 국민의 생활수준이 같아지는 날 독일의 통일은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
26일 서베를린 국제회의센터(ICC)에서 개최된 동서독 사민당의 합당을 위한 통합창당대회 첫날 사민당 총리후보인 라퐁텐 자를란트주지사가 한 이말은 통일독일이 해결해야할 과제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독일의 통일이라는 영광과 환희의 이면에는 물론 예상은 했지만 「호사다마격」의 숱한 문제들이 엄연한 현실로 남아 있는 것이다.
부실기업 하나 잘못 인수했다가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거나 심지어는 도산위기까지 하는 예가 종종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종업원(인구) 1천6백만명,매상고(GNP) 2천70억달러의 거대 부실기업(동독)을 인수하는 사상최대의 「기업인수합병」(M&A)에 문제점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다.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라퐁텐의 말처럼 하루빨리 동독의 경제를 재건,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연구기관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동독의 경제를 서독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드는 이른바 통일비용은 어림잡아 1조마르크(약 4백50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서독 정부는 우선 국고와 지방정부예산을 갹출,94년까지 1천1백50억마르크를 동독에 지원하기로 했으나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기업에 대한 지원과는 별도로 동독의 낙후된 기간산업부문에만 6천5백억마르크가 드는 것으로 독일 경제문제연구소의 코넬슨 박사는 예측하고 있다. 즉 주택건설에 2천3백억마르크,도로건설에 2천1백억마르크,에너지 및 상수도 분야에 8백억마르크,철도에 5백억마르크,전화가설에 3백억마르크 등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막대한 통독비용의 상당부분을 서독의 기업이 투자해서 맡아줘야 하는데 예상했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윤추구가 최대의 목표인 서독기업들로서는 현재 기간산업의 미비등 투자여건이 나쁜데다 지금 당장은 서독보다 낮은 동독의 임금수준이 조만간 서독과 같아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진출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동독의 실업인구는 경제사회통합 두달째인 8월말 현재 40만명선에 육박하고 있고 연말까지는 1백만명(2백만명까지 예상하는 연구기관도 있음)을 넘을 것으로 예상돼 벌써부터 동독에서는 파업과 시위 등으로 「뜨거운 가을」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7월1일의 경제통합 이후 동서독 모두 물가오름세가 계속되고 있고 통일비용조달을 위한 조세인상의 가능성도 서독정부 관리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통일을 바라보는 동서독 국민들의 시선이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통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최근 슈피겔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서독국민의 29%라는 적지않은 숫자가 통일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난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경제문제외에도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50만명에서 1백만명으로 추산되는 옛땅 주인들(서독인)의 재산반환 요구문제도 아직 명확하게 해결된 상태는 아니어서 동독 주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또 갈탄에 대한 에너지 의존비율이 70%가 넘는 동독의 심각한 공해문제도 해결이 시급한 상태다.
특히 그간 동독 정계의 시한폭탄이었던 과거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 관련문제는 통일정부가 떠맡게 되는 난제중 하나다.
최근에는 피셔라는 전슈타지조사위원회 위원이 『동독 각료중 6명이 슈타지의 첩자였다』고 폭로,동독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외형상의 문제일뿐 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분단 40년이 초래한 동서독 주민간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체제속에서 40여년을 살면서 사고방식ㆍ생활패턴은 물론 언어생활까지 동서독 주민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데는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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