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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주파수 판 값 5조, 어디에 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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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레터 35호,  2020.11.24. 

Today's Topic
주파수 판 값, 어디에 쓴다구요?

팩플레터 35호

팩플레터 35호

안녕하세요. 미래를 검증하는 팩플레터입니다.
오늘 팩플레터에선 정부의 ‘합법 딴주머니’에 대해 알아봤어요. 바로 기금! 얘깁니다.
우리 정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총 67개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기금이나 고용보험기금처럼 우리가 낸 사회보험료를 걷어 만든 기금도 있고, 공공재인 주파수나 전파를 정부가 기업에 빌려주고 돈을 걷어서 만든 기금도 있습니다.

국민 쌈짓돈을 모은 방식이든, 기업에서 걷었든 간에 기금은 정부의 쏠쏠한 실탄 역할을 합니다. 국회 의결 없이는 한 푼도 더 쓰거나 옮겨 쓸 수 없는 예산과 달리, 기금은 당초 정한 목적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정부가 자율적으로 변경해서 쓸 수 있거든요. 대신, 기획재정부가 주기적으로 기금의 운용 성과를 평가하는 식으로 관리합니다.

최근 ICT 산업계에서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놓고 시끌시끌합니다. ICT나 미디어 산업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기금을 처음 들어본 분들도 많을텐데요.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결코 $%name%$님과 무관한 얘기가 아니랍니다. 매달 내는 휴대폰 통신비, 자주 쓰는 모바일 앱 서비스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5G 같은 통신 인프라를 만드는 비용을 누가 더 내야 하는 대한 문제이기도 하죠. 복잡해보이시나요? 그래서 오늘은 팩플팀이 더 심플하게, 평소보다 더 짧게 썼습니다.
오늘도 ‘(선) 팩플 (후)설문’ 잊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 핵심 인물 

팩플레터 35호

팩플레터 35호

1. 이동통신 3사 : 네고 가능한 부분?
4G∙5G 같은 주파수를 할당받은 대가로 정부에 사용료 낸다. 5년마다 나눠주며 가격을 정하는데, 3G∙4G 재할당료를 정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2.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방송통신위원회: 좋은 데 쓸 데 많음
주파수 할당을 맡아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조성하고 집행하는 주체. 기금은 ICT와 방송 진흥 사업, 정부 하반기 역점 사업인 디지털 뉴딜에도 쓰일 계획.

3.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 옵티머스.. 수사 중이라 말 못행
과기부 산하 단체로,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의 운용 주체. 2017~2018년 두 기금에서 1060억원을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운용본부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중.

4. OTTㆍ포털 : 잊을만 하면 부르네?
정진기금, 방발기금의 법정 납부 대상은 아님. 그런데 국회에서 ‘방송사, 통신사보다 큰 넷플릭스와 네이버에도 기금 걷자’는 주장이 나와 신경쓰임.

🧾 목차

1. 무슨 일이야
2. 왜 지금 기금 갖고 난리?
3. 나랑 무슨 상관이야
4. 돈 문제 : 어디에 쓰나
5. 법 문제 : 누가 내나
6. 운영 문제 : 투명성, 효율성
7. 앞으론 어찌 되나

1. 무슨 일이야

정부의 기술산업 분야 양대 기금인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이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주파수 값이 너무 비싸다’는 3대 통신사의 불평과 옵티머스 펀드에 공공자금이 대거 유입됐다는 의혹, 무관해 보이는 두 사안의 교집합에 양대 기금이 있다.

●통신사는 국가에 돈을 내고 주파수를 할당받는다. 전파법에 따른 이용 기간은 5년. 통신 3사가 쓰는 2G∙3G∙4G 주파수의 80%가 내년 재할당 대상이다. 지금 한창 가격 산정 중인데, 통신사는 1.6조원을, 정부는 최소 3.2조원을 주장해 간극이 크다.
●수조원의 주파수 대금은 정진기금(55%)과 방발기금(45%)으로 귀속된다. 정보통신과 방송 발전 같은 공익에 쓴다는 것. 두 기금의 집행은 각각 과기부와 방통위가, 운용은 모두 전파진흥원이 맡는다.
●투자 사기 혐의를 받는 옵티머스 펀드에, 정진∙방발기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전파진흥원이 계약 규정에 어긋나게 옵티머스에 기금을 투자했던 것이 과기부 감사에서 밝혀졌고, 이 과정에서 외압이나 로비가 있었는지를 현재 검찰이 수사하는 중이다.

2. 왜 지금 기금 갖고 난리?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놓고 정부와 통신 3사 간 견해차가 큰 상태에서 기금 투명성 문제가 터졌다. 금액이 큰데, 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지적에, 어디에 쓰이는 게 맞나, 누구한테 걷어야 하나 같은 질문까지 나온다.

●전파진흥원이 운용한 올해 두 기금 규모는 총 2조3450억원(정진기금 1조1377억원, 방발기금 1조 2085억원). 국가가 관리하는 67개 기금 중 중대형으로 상위권에 속한다.
●과기부는 2018년 옵티머스 투자와 관련해 전파진흥원을 한 차례 감사했다. 그런데 당시 748억원으로 알려졌던 투자 규모가 최근 검찰 수사에서 1060억원으로 나오는 등 감사의 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를 추궁받은 과기부는 “전파진흥원을 2차 감사하겠다”고 했다.
●정진기금은 통신사가, 방발기금은 통신사와 방송사가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넷플릭스 같은 OTT나 네이버 같은 포털도 기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국회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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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랑 무슨 상관이야

통신사가 내는 수조원 대 주파수 대금은 통신원가에 반영된다. 통신사들은 이를 내세워 ‘주파수 대가를 낮춰야 요금이 내린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주파수 사용료를 감안해도 통신사는 이미 막대한 이윤을 낸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어쨌거나 주파수 대금이 결국 소비자의 통신 요금에서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5G 주파수 낙찰가는 3조6183억원이었다(2018년). 이통사는 ‘주파수 대금 등 투자가 어마어마하다’며 통신요금을 인하하기 어렵다는 주요 근거로 이 비용을 들었다.
●지난달 국회 과방위 소속 우상호 의원이 공개한 ‘5G이용요금 원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휴대전화 가입자 1인당 원가는 3만6085원. 5G 주파수 획득ㆍ투자로 전년보다 3400원 가량 올랐지만, 1인당 매출(약 5만1000원)을 감안하면 마진율이 높다. 통신사는 “약정ㆍ결합 할인 등이 제외돼 부풀려졌다”고 반박.
●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 3사의 매출액 대비 주파수 비용(할당료+전파사용료) 부담률은 8.1%다. 이탈리아(12.2%)나 영국(10%)보다는 낮지만 미국(4.1%)이나 독일(5.3%)보다는 높은 수준.
●정부는 이번 주파수 가격 산정에서 “5G 기지국을 많이 세우면 할당료를 깎아주겠다”고 옵션을 내밀었다. 주파수 대금이 비싸 5G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통신사의 볼멘 소리를 반영한 것.

4. 돈 문제 : 어디에 쓰나

공공재인 주파수와 전파를 사업자에 내준 값인 만큼,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은 산업 진흥 및 공익 사업에 쓰도록 법에 명시됐다. 언제나 그렇듯 법조문의 용어는 추상적이고 해석의 폭은 넓다.

●두 기금은 과기부·방통위의 연구개발(R&D)이나 산업 표준 개발, 인력 양성과 시청자 지원같은 각종 ‘진흥 및 공익’ 사업에 쓰인다(전파통신산업진흥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이번 디지털 뉴딜의 다수 사업비가 양대 기금에서 지출된다. 중소기업에 데이터 바우처를 지급하는 사업(1230억원), 지능정보산업인프라 조성사업(3890억원), 디지털콘텐츠코리아 펀드 조성(200억원) 등이다.
●아리랑TV와 국악방송, 지역 공동체라디오 등도 기금에서 보조금을 받아간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지자체 예산에서 써야 할 것도 돈많은 기금에서 가져간다는 지적이 있다(국회예산처, 국회 과방위).
●기금이 통신 소비자나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불만도 수년 전부터 나왔다(녹색소비자연대 등). 지난해 이들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는 ‘저소득층 디지털방송 시청지원’(13억원),  ‘소외계층 통신접근권 보장’(18억원), ‘교육콘텐츠 데이터요금 지원’(31억원), ‘버스 와이파이 확대’(33억원) 등이 있다.

팩플레터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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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법 문제 : 누가 내나 

방발기금ㆍ정진기금을 내는 사업자의 종류는 둘, 통신사와 방송사다. 내는 액수의 차이는 크다. “넷플릭스ㆍ네이버에도 걷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러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통신사와 방송사가 부담금을 내는 건, 공공재인 주파수와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사회가 경마 이익금의 70%를 축산발전기금에 내고, 카지노사업자가 매출 10%를 관광진흥개발기금에 내는 등 타 기금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올해 통신3사는 총 1조 3067억원(주파수 대금),  방송사들은 총 365억원(광고매출의 0.1~3.8%)을 기금에 냈다. ‘통신에서 걷어 방송에 쓴다’는 건 통신사들의 묵은 불만.
●국영방송사는 기금에 내는 돈보다 받아가는 돈이 더 많다. EBS는 올해 방발기금에 4억원을 냈지만 283억원의 제작지원을 받았고, KBS는 65억원을 냈지만 기금에서 97억원을 보조받았다.
●올해 출범한 21대 국회 과방위에서는 “OTT와 포털에도 기금을 걷자”는 말이 나온다. KBS 부사장 출신인 정필모 의원과 MBC 아나운서 출신인 한준호 의원(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주장.  “포털도 기금을 통해 구축된 통신ㆍ방송 인프라의 수혜자다”(정필모), “넷플릭스와 방송사가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한준호)는 논리다.
●OTTㆍ포털은 “허가사업자도 아니고, 공공재로 사업하는 것도 아닌 우리가 왜 내나” 반발하지만 일이 커질까 침묵 중. 과기부와 방통위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6. 운영 문제 : 투명성, 효율성 

방발ㆍ정진 기금은 규모에 비해 관리 감독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과기부와 방통위가 각각 비슷한 사업에 기금을 중복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국회 예산 심사 때마다 나오는 지적이다.

●두 기금은 모두 전파진흥원의 기금운용본부가 위탁 관리한다. 운용 관리비는 기금에서 충당하도록 돼 있다. 2021년엔 288억원 책정.
●과기부는 전파진흥원의 투자 문제를 몰랐다. 기금을 떼이지 않은 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내분 덕이었다.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난 옵티머스의 전직 대표가 과기부에 “옵티머스가 전파진흥원의 투자금을 엉뚱한 데 썼다”고 제보했고, 과기부는 자금을 회수했다.
●기금을 옵티머스에 투자한 전파진흥원 운용본부장은 2018년 감사에서 경징계인 ‘견책’에 그쳤다. ‘자금이 회수됐고 기금에 피해가 없다’는 이유였다.
●국회 예산처는 내년도 기금운용 계획을 심사하고는 ^비슷한 사업의 예산이 두 기금에 중복 편성돼 비효율적이며 ^기금으로 과기부와 방통위의 국외업무여비 및 산하기관 인건비를 쓰는 것이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7. 국회·정부는 뭐해? 

정부는 방발ㆍ정진 기금을 통합하려고 한다. 목적은 합리적 운용. 업계는 ‘누구한테 유리할까’ 저울질하느라 바쁘다. 전파진흥원 기금 운용에 대한 과기부의 2차 감사도 막바지다.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 의결기구인 정보통신전략위원회는 지난해 ‘ICT기금 합리화’를 발표했다. 두 기금의 목적과 용도가 같은 만큼 합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
●기금 통합 준비는 진행 중이다. 서성일 과기부 정보통신산업정책과장은 중앙일보에 “두 기금이 통합돼도 전파진흥원이 운용하며 사용처와 사업 목적에 큰 변화는 없다”고 했다.
●방송업계에서는 ‘통합 기금으로 콘텐트 제작을 지원해주려나’ 기대한다. 지난 9월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정필모 의원이 “통합 기금으로 방송 제작에 활용해야 한다” 주장하자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콘텐츠 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했다.
●과기부는 전파진흥원 기금 운용본부를 2차 감사 중이다. 과기부 박노재 감사담당관은 중앙일보에 “조사가 막바지”라며 “최초 감사 때 전파진흥원이 말한 투자액과 실제 액수가 왜 달랐는지,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팩플 서베이 

네이버 같은 포털, 넷플릭스 같은 OTT도 통신사나 방송사처럼 ‘ICT 기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세요?(응답기한 완료)
👉 설문 결과 분석은 팩플언박싱 메뉴에

팩플의 추천 콘텐트

정부 부처들의 예산안은 공개돼 있지만 '독해'는 쉽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사업명만 봐서는 이게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어디에 돈을 쓰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ex. '행복한방송환경조성', '차세대인터넷비즈니스').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두 가지 자료를 추천합니다.

1. 국회예산정책처, 『2021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 보기
정부 부처가 예산을 편성해서 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를 분석하고, 국회는 이를 심사해 의결합니다. 과방위 소속인 과기부와 방통위의 예산 및 기금 운용 계획의 현황과 특징,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가 자세히 나옵니다. 단! 분량이 깁니다.

2.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 기금 사업 설명자료』
정부 부처는 예산 및 기금운용 사업 내용을 자료로 설명해야 합니다. 방통위의 내년 기금 사업 설명자료는 아직 공개되지 않아서 올해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추상적 명칭의 사업이 실제로는 어떤 내용인지 좀 더 와닿게 설명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