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소식 듣고… 한약 사고파는…/중국교포 「만남의 광장」/덕수궁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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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근처엔 영대사관ㆍ출입국사무소… 매일 100여명 “북적”/약제보따리에 “마약 거래” 신고도/대부분 알뜰,더워도 다방엔 안가
서울 한복판 덕수궁 대한문앞 광장이 고국을 찾는 중국 교포들에게 「만남의 광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매일 1백여명의 중국교포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 고향소식과 안부를 나누고 입국할때 가져온 각종 한약의 원매자를 탐문하는 등 정보를 교환한다.
중국교포들의 고국 방문이 부쩍 늘어난 지난해 이후 5월부터 10∼20명의 교포들이 영국대사관 앞에서 모이기 시작,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말께부터 현재의 대한문앞과 돌담길옆 가로수 그늘로 자리를 옮기더니 최근엔 매일 1백여명이 북적댄다.
중국 교포들이 이 만남의 광장에 모이는 시간은 오전9시부터 피크타임인 11시를 지나 오후6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군밤ㆍ오징어 등을 파는 노점상 김이남씨(53ㆍ여)는 『요즘엔 하루종일 「쏴ㄹ라쏴ㄹ라」하는 중국말을 쉽게 들을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문앞 광장이 중국교포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인기를 끌고있는 것은 이곳이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장소이고 교통이 편리한데다 무엇보다도 영국대사관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
교포들은 영국대사관에서 귀국때 통과해야하는 홍콩입국비자를 받거나 대법원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기한을 연장하는 등 갖가지 일을 쉽게볼수 있는 이곳에 자연스럽게 모여들게된 것이다.
서울 보광동에 사는 처삼촌 초청으로 8월초 부인과 함께 입국한 이기은씨(32ㆍ농업ㆍ중국 흑룡강성 아성시)는 『중국교포들 사이에는 이곳에 가면 사람들을 다 만날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고국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한두번씩 꼭 들른다』고 말했다.
이밖에 중국교포들이 이곳을 찾는 또다른 이유는 중국에서 갖고온 각종 한약을 처분하고 각종 정보도 교환하기 위해서다.
교포들중 상당수가 큼직한 보따리나 가방ㆍ쇼핑백에 한약을 가득 가지고 나와 이곳에서 거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얼마전엔 가방들을 갖고 서로 수군대는 장면을 본 한 시민이 마약 등을 거래하는 범법자로 알고 근처 파출소에 신고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들이 가져오는 한약은 우황청심환을 비롯,녹용ㆍ편자환ㆍ발모제ㆍ무좀약 등 1인당 수십만원에서 많은 경우는 수백만원어치까지.
한국에 나가 한약을 팔면 2∼3년 편히 먹을수 있는 돈을 번다는 소문이 번져 아예 생업을 팽개치고 보따라 장수로 나서는 교포까지 생겼으나 최근엔 『가짜 한약이 많다』는 말이 나돌며 원매자가 격감,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포들은 씀씀이가 매우 알뜰한게 특징. 대한문옆 덕수식품 주인 나점순씨(38ㆍ여)는 『교포들 대부분은 7백원짜리 라면이나 빵ㆍ우유로 점심을 때우며 아무리 한여름이라 해도 더위를 피해 다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엔 한약보따리장수를 상대로 사기와 강도사건까지 발생,교포들이 외부인들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는 등 불안한 분위기까지 돌고 있다.
대한문앞 덕수궁관광안내소 직원 김재근씨(32)는 『고국을 찾은 교포들이 길거리에서 모이는 모습이 안쓰럽다』며 『이들이 편안하게 만날수 있는 항구적인 「만남의 광장」을 만들었으면 좋을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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