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 넘는 아파트 한달 새 2만6000곳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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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左)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右)이 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대책 관계장관 회의 도중 도시락을 먹으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 십수 차례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를 위해 긴급 장관회의를 소집한 적은 없었다. 그런 정부가 갑자기 각 부처 장관을 긴급 소집해 대책회의를 연 것은 그만큼 최근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에 당황했다는 의미다.

◆ 왜 긴급회의 했나=정부가 3일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최근 집값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파주.검단 신도시 같은 공급 확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강남.목동 등 인기지역뿐 아니라 구리.부천 등 수도권 주변까지 집값 상승세가 확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이 곧 안정될 것"이라던 정부의 장담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부동산 정책 실패론'까지 불거졌다. 이날 회의는 형식상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소집하고 주재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일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에서 "요즘 부동산 문제가 혹시 금융의 해이로부터 발생한 것 아닌가 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추가 대책이 나올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집값이 다락같이 오르며 시장이 흔들리는 지금 '조기 진화'에 실패하면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져 내년 대선에서 큰 짐으로 작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권 부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에 다소 비정상적인 모습이 나타났다"며 마주 앉은 추 장관을 노려봤다. 권 부총리는 "그동안 관계부처 간 조율을 거치기 전에 목소리가 나오는 경향들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부처 간에 긴밀하게 협의하도록 특별히 유의하자"고 덧붙였다. 추 장관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대책은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근본 대책은 포함하지 못한 채 그동안 거론됐던 내용을 나열하는 데 그쳐 '땜질식 즉흥처방'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권 부총리가 2일 오후 긴급 장관회의를 소집해 각 부처에 현황점검과 보완대책 마련을 지시했지만 하루 만에 충분한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 예사롭지 않은 상승세=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6억원을 넘는 아파트는 10월 말 현재 38만6337가구로 10월 한 달 동안 2만6939가구 늘었다. 증가 폭이 9월의 2배 수준이다. 6억원을 밑돌던 아파트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6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선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약하기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집값 상승세가 강북 등 전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1.5% 올라 연중 최고기록(지난주의 1.2%)을 깼다. 수도권의 아파트값 상승세도 1.79%로 올 들어 최고치였다. 특히 강북구(2.4%).관악구(2.1%).구로구(1.8%) 등의 상승률은 서울 평균을 웃돌았다. 노원구 하계동 25시 공인 조향숙 사장은 "매물이 없어 집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강북구 미아동 양지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계속 오를 조짐을 보이자 대기 매수자들이 서둘러 집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아직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노원.도봉.동대문.서대문.중랑구 등도 최근 집값 상승으로 투기지역 후보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시 전역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되기 직전이다.

◆ 추가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은=이날 대책에 대해 대부분 전문가는 주택 수요자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용적률을 높여 고밀도 개발을 유도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취지는 좋지만 강남처럼 필요한 지역의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넥스플래닝 길연진 소장은 "집값 상승의 불씨를 안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며 "단기적 부작용이 있더라도 재건축을 촉진할 수 있도록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감독 강화도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민에게만 피해가 돌아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마이다스에셋 신봉교 부동산본부장은 "노무현 정부가 숱한 수요억제책을 쏟아냈지만 한 번도 집값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며 "인기 지역의 공급 물량이 늘지 않는 한 집값 상승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준술.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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