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가입」 갈길 다른 대좌/남북 18일 판문점접촉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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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 조급 “남 단독가입은 막자”/남 느긋 “평양회담 돌출 예방”/서로 큰 시각차… 타결기대 어려워
그동안 남북간의 설전으로만 오가던 유엔가입문제가 처음으로 협상테이블위에 올려지게 됐다.
양측은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13일 오전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18일 오전 쌍방대표가 만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당국자는 『18일에는 북측으로부터 단일의석 가입주장에 대한 설명만을 듣는 것 뿐』이라며 이번 회동을 「접촉」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고위급회담대표 1인씩이 참석하고 ▲18일에 이어 2차,3차의 접촉에서 양측이 토론과 협의에 나설 뜻은 분명해 이번 회동은 타결여부와 관계없이 「남북유엔회담」의 출발이란 성격이 있다. 남과 북은 49년이래 각각 8차례,4차례씩 독자적 유엔가입을 시도하면서 치열한 외교공방전을 벌였고 한때는 피차 의미없는 소모전에 회의를 느낀 바도 있어 유엔문제를 일단 「대화」의 차원으로 변형시킨 것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부여에도 불구,회담전망은 결코 가을날씨가 아니다. 북한측 안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비현실성과 국면모면성을 감안할 때 타결의 가능성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측은 북측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의도가 합의 도출에 있다기보다는 일단 올가을 유엔총회에서 남한의 단독가입을 저지시켜놓고 보자는 전략적 고려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북한은 우리의 단독가입 움직임을 발등의 불로 보고 있다. 최근 북한은 유엔에서 서방국가들이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를 사소한 내부문제로 유엔에 가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끼리 논의중이니 기다려달라』고 호소해왔다.
지금까지는 남한의 유엔가입을 좌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소ㆍ중의 「거부권」에 기대왔지만 우리측의 발빠른 북방외교로 이 언덕마저 무너질 기미를 보이자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1일 김일성이 극비리에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강택민총서기등 중국지도부와 긴급협의를 가진 보따리 속에도 중국을 통해 우리의 단독가입을 확실히 막아놓겠다는 계산이 들어있는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북측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우리측으로부터 「단독가입 일단 보류」라는 언질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지만 불안감을 말끔히 씻지 못하고 있다.
남한으로부터 좀더 확실한 보장을 받으려면 인적ㆍ물적교류에서 남쪽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체제붕괴의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싸여있다.
우리 정부는 북의 이같은 사정을 볼 때 18일 회동에서 북측이 협상가능한 구체안을 제시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남ㆍ북한이라는 두개의 주권국가가 단일의석으로 가입할 수 있는지 ▲단일이 되더라도 양자가 의견차이가 있는 국제사안에 대해 어떻게 표결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북한은 명쾌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계속 「대화」를 이어갈 구실을 내놓는 선에서 회담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이번에도 ▲남북만 합의하면 회원가입은 가능하고 ▲양측이 의견일치를 본 사안에 대해서만 투표권을 행사하고 다른 미묘한 사안엔 기권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전개를 되풀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북측은 합의만 하면 된다고 하나 남북대화 경험상 대표단구성ㆍ의결권행사 등은 가까운 시일내에 합의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해 남북유엔회담에서의 타결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그러나 남북간 유엔가입협의가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리는 2차 남북 고위급회담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북측을 계속 남북대화 테이블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북측이 원하는 한 남북유엔회담을 계속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우리는 궁극적 목표가 북한을 개방시켜 공존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인 만큼 이 시기에 꼭 북한과 등지면서 유엔에 단독가입해야 할 필요가 없는 정부로서는 바둑의 「꽃놀이패」를 쓰고 있는 형국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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