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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왕따 아니라 우기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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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미.중 3자 회동의 실마리는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이다."

유명환 외교부 1차관이 1일 국회 국감장에서 한 말이다. 지난달 31일 3자 회동을 통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common-and broad approach)'이란 북한의 핵실험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한.미.중 등이 노력하자는 취지로 우리 정부가 거론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걸 한.미 정상회담의 주된 성과라고 홍보해 왔다.

유 차관의 주장대로라면 이 방안이 마침내 효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한국이 '왕따'당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에서도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3자 회동 과정을 알 만큼 알았다"거나 "지난달 25일 감을 잡았다"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미국 측은 코웃음치고 있다. 국무부의 한 소식통은 "정말 웃기는 얘기(absolutely ridiculous)"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린 한국 측이 꺼낸 포괄적 접근방안에 기대를 건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을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에 회동을 제의한 시점이 지난달 25일인데 한국이 바로 안 것이냐'고 묻자 그는 "말이 안 된다(It does not make sense)"고 대꾸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틀을 고민해 결심했는데 한국이 어떻게 그리 빨리 알 수 있단 말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우리 외교관에게도 '유 차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미국 측에 물어 보라"는 회피적인 대답이 나왔다. 다른 외교관에게 '미국이 일본엔 정보를 주고 우리에게는 안 준 것 같다'고 했더니 "요즘 험한 꼴 보고 산다"고 푸념했다.

이런 마당에 참여정부가 외교에서 무슨 대단한 공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그건 외교를 못하는 것보다도 나쁜 것이다. 19세기 독일 제국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정직이 가장 좋은 외교정책"이라고 갈파했다. 노무현 정부가 가슴에 새겨둬야 할 말이다.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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