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표준화대상] "표준경쟁 뒤처지면 산업 종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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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머리를 감으려고 샴푸병을 집었다. 눈을 감은 상태지만 오돌토돌한 돌기가 만져져 '제대로 집었구나' 싶어 안심하며 샴푸를 짰다. 샴푸병과 린스병은 디자인이나 크기가 같아 혼동돼 2004년부터 샴푸병 옆면엔 돌기를 넣는 것을 KS표준으로 제정했다. 시각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배려였으나 누구든지 매우 편리한 '표준'이 됐다.

자동차 대중화의 기틀을 놓은 사람이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100년 전 자동차 양산을 위해 도입한 '포드시스템'이 '표준화 전략'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포드시스템의 핵심은 ▶생산모델 단일화를 위한 부품 표준화▶공구사용법 개선을 통한 공정 표준화다.

고대 이집트가 '표준화된 원통 모양의 돌'을 무게 단위로 사용한 이래 표준은 국가 차원에서 중요 정책으로 다뤄졌고,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져 왔다. 과거엔 표준화를 대량 생산을 위한 호환성 확보 수단쯤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세계시장 확보를 위한 기업의 경영전략, 나아가 국가의 산업정책 수단이 됐다.

최근 국내 한 기업의 동영상 압축기술(MPEG)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이 기업은 로열티를 포함해 10년간 약 1조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전망이다. 몇 해 전까지 휴대전화마다 충전방식이 달라 휴대전화를 바꿀 때마다 충전기도 함께 바꿔야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충전기를 표준화하면서 연간 약 3500억원의 절약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표준정책이 빛을 본 사례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여러 부처가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표준과 인증을 만들다 보니 서로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각종 민간인증까지 난립하고 있다. 기업은 중복검사와 중복인증으로 불편을 겪고, 소비자는 다양한 인증마크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표준강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정부는 올 5월 '제2차 국가표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향후 5년간 추진할 청사진엔 19개 부처가 각기 관리하는 각종 국가표준 및 인증제도를 대체할 '국가대표인증마크' 도입을 비롯해 ▶국가표준 체계 선진화▶표준기술 하부구조 강화▶민간 표준화역량 강화▶국제표준 선점 방안 등이 담겨 있다. 표준도 변하고 발전해 간다. 정부는 기본계획 추진의 일환으로 최근 척관법 사용을 종식시키고, 미터법 사용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척관법의 원조인 중국도 포기한 척.평.돈 등의 단위는 정확한 계량이 불가능한 만큼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미터법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세계는 '표준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의 승자는 막대한 시장 창출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지만, 패자는 시장종속이라는 상처와 함께 경제적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우리는 R&D강국, 특허강국의 위상을 확보했다.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은다면 머잖아 표준강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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