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차였다, 낙엽처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만남이 일상이듯 헤어짐도 일상입니다. 하지만 때론 너무 아파, 울음조차 사치인 듯 고통스러운 이별도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야죠. 아무렴 더 좋아지겠죠. 괜히 추운 가을, week&이 상실감에 젖은 당신을 찾아갑니다. 우선 들어보시죠. 이름까진 차마 밝힐 수 없는 한 기자의 실연(失戀) 전말기입니다.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포토일러스트레이션=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본사 어느 기자의 실연기

"헤어져."

그녀의 말 한마디에 지구가 멈춰 버렸습니다. 처음엔 부정했죠. 내가 좀 무심했기로서니…. 설마, 진정이겠어?

3년반이나 사귀었거든요. 대학 문 들어서자마자 눈 맞아 미팅 한번 변변히 못 해 보고, 4학년 되도록 입대까지 미뤄가며 지킨 사랑이었는데.

"넌 왜 네 생각만 하니. 난 왜 늘 틀렸고 사과만 해야 하는데!" 알쏭달쏭한 말만 남기고 가버린 그녀. 하루 이틀 기다려도 연락이 없기에 뒤를 캤죠. 블로그.카페.e-메일.휴대전화 통화 내역까지. 새 남자친구가 생겼더군요. 미칠듯이 화가 났어요. '배신'이란 도덕적 약점을 이용해 흠을 잡고(친구와 부모님께 고자질), 새 관계에 훼방을 놓으며(새 남친에게 편지.전화하기) 돌아오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지요. 그녀의 집 앞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꺼이꺼이 울기도 몇 번 . 사랑은 피할 수 없는 뻔뻔함이라고 하잖아요.

한데 그 '강력'이 더 문제였더군요. 그녀는 갈등하며 미안해하던 마음마저 엷어지고 오기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더 굳어지데요. 본디 허세이던 제 큰소리는 급격히 잦아들고, 결국 애원을 하게 됐죠. "성격.말투까지 다 바꿀 테니 용서해, 응?" 그 비굴함이라니.

만신창이가 돼 결국 체념하고 돌아섰어요. 죽을 병 앞에 몸부림치는 환자나 다름 없었죠. 과연 누군가를 다시 만나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존재의 배경을 잃은 것 같고, 아예 노인이 돼 버린 것도 같고…. 이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지는 게 억울했습니다. 피해자는 울고 가해자는 행복한 결말이라니!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죠. 이런 일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걸. 마음의 문제에 '가해'니 '피해'니 '승리'니 '패배'니, 그런 개념들을 들이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맘이 좀 가벼워졌고, 사랑을 강요한 내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해라" 하며 멋있게 보낸다는 건 아무래도 위선이라 생각하지만, 그녀를 좀 덜 괴롭혔다면 내 고통도 짧았을 텐데…. 생각이 거기 미친 다음에야 상처에 딱지가 앉기 시작하데요. 물론 요즘도 가끔 그 부위가 근질근질하지만 말이에요.

실연에 면역이 없는 건 확실해요. 그 뒤로도 비슷한 고통을 두세 번 더 겪었으니까요. 여전히 아팠지만 회복은 점점 더 빨라졌고 뒷모습도 확실히 쿨해져 갔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전 또 소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난 상처가 더 큰 사랑을 위한 두둑한 밑천임도 알게 됐고요.

그러니 당신, '나'를 꼭 붙드세요.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실연의 주제곡 같은 그 노래, 이젠 꺼버리셔도 좋아요. 보세요,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잖아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