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농정 억울한 농민(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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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농어민 후계자는 정부가 뽑은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우리들이 서울에서 집회를 갖는 것조차 겁낼 정도로 정부가 농정에 자신을 잃고 있으니….』
29일 오후10시 서울 강남 성모병원 707호실. 침대에 누워있는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이경해회장(43)이 초점 잃은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이회장은 서울에서 열려던 제2차 농어민후계자대회가 지방으로 밀려나 파행적으로 치러진데 항의,대회 다음날인 21일부터 단식에 들어가 9일만에 탈진상태에 빠져 입원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농어촌은 뿌리,도시는 꽃」­. 도농간의 거리감을 해소한다는게 목표였다.
당초 대회는 서울 여의도 및 한강고수부지에서 열기로 예정됐었으나 환경오염 등의 석연찮은 이유로 보라매공원ㆍ미사리조정경기장 등으로 장소가 변경되다 결국 충남 성환 국립종축장으로 밀려나버렸다.
그러나 농정실패에 대한 농어민후계자들의 불만이 높아 대회기간중 농민들의 우발적시위가 예상된다는 점이 서울대회무산의 실질적인 이유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설상가상으로 대회기간중 폭우가 쏟아져 1만8천여 농어민후계자와 그 가족들은 비새는 야영텐트안에서 분노와 울분속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서울시민들에게 팔려고 준비했던 농산물과 활어 등 2억여원어치의 지방특산물은 선도 못보인채 고스란히 폐기처분했다.
『오늘의 농촌현실을 서울시민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진솔하게 느껴보려 했는데….』
이회장의 병상을 지키기위해 전남 장성에서 올라온 한 농민후계자의 한숨섞인 한마디.
우루과이라운드 농수산물협상으로 불안해하는 농어민후계자들의 모임조차 지방의 「가축우리」로 몰아내는 정부의 단견이 농정불신의 골을 한번더 깊게 했다는 느낌이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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