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다원화를 위한 비평풍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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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예술ㆍ문화계와 지식인 사회 내부에서 활발한 비평과 토론이 일고 있다. 지난 1주동안의 문화계 소식만을 일별해도 민중문학 내부의 선후배 논쟁이 본격화되었고 굳이 민족극이냐,아니냐를 따지는 연극 이론논쟁이 벌어졌으며 음악평을 놓고 음악협회와 비평가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양상까지 보였다.
비단 예술계 뿐만 아니라 현실사회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관점이 자유주의적이어야 하느냐,혁신적이어야 하느냐를 논박하는 한 작가와 경제평론가의 논점이 지식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젊은 역사학자들의 무분별한 진보적 관점에 제동을 거는 원로역사학자들의 준엄한 경고가 돋보이고 있다.
괴어있는 웅덩이 물은 썩게 마련이다.
삶의 총체적 표현인 예술문화가 정체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기 위해 비평과 토론은 통풍역할을 맡게 되고 새로운 물꼬를 틀어가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비평과 토론이란 문화의 다양성과 다원화를 촉발하면서 그 다원적 개체성이 문화의 큰 흐름인 총체적 역량을 키우는 상반된 역할을 맡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최근 일고 있는 문화계와 지식사회의 논쟁과 비평이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다원화를 꾀하면서 동시에 뭔가 새로운 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건전한 문화습관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그러한 방향에서 논쟁과 비평이 더욱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비평과 논쟁이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인신공격적 형태로 빗나가 버리는 종래의 타성을 탈피하기 위해선 적어도 ①비평의 과학성ㆍ객관성이 중시 되어야 하고 ②비판과 토론에 있어 인신공격형의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겸허한 수용과 논리적 반대의견이 제시되어야 하며 ③단선적 사고와 규격화ㆍ획일화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문화계나 학계의 논쟁풍토가 과연 이런 평범한 전제마저 존중되고 있는가를 좀더 가까이서 따져본다면,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비평풍토는 다양화ㆍ다원화를 통한 상호수용의 과정에서 단절과 대립의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크게 갈라본다면 비평부재와 비평난립의 현상이다.
특히 예술분야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나쁜」 비평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비평부재의 단적인 예다. 연주회의 평을 나쁘게 썼다고 해서 욕설로 항의하고 위협까지 감행하는 예술풍토라면 그런 예술이란 웅덩이속의 썩은 물이 될 뿐이다.
이런 풍토속의 예술세계에서 비평은 예술을 위한 겉치레고 들러리일 뿐이다.
천편일률적인 전람회의 평론가 글,연주회 때마다 상찬 일변도로 장식되는 평론은 이미 비평이 아닌 아부일 뿐이다.
이러한 비평부재현상 못지 않게 우려되는 현상은 비평의 난립과 대립양상이다. 지나치게 애국을 강조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국수주의적 시각이나 이를테면 국독자(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심취되어 모든 역사를 그 시각의 틀속에 맞춰 버리는 진보적 학풍 또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시각과 논리에 맞지 않는 상대방은 모두가 지배계층의 하수인이고 반역사적 반동으로 몰아 버리는 지적 풍토의 경직성이 비평난립으로 표현되고 있다.
문학을 투쟁전선에 「복무」하는 선전ㆍ선동의 매개체라는 민중문학 내부의 급진적 젊은 세대들에 대해 『문학은 방법의 획일,사고의 규격화로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다』면서 젊은 시인들이 빠져있는 시야의 단선성을 극복하라는 선배 시인의 충고는 더욱 값지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모든 역사를 분단의 시각과 민중의 역사로 파악하려는 소장파 역사학자들에게 역사연구에 있어서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원로학자의 지적은 소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평부재의 예술풍토에서는 건전한 비평문화가 새롭고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고 이미 오랜기간동안 극한적 대립관계만을 유지해온 문학ㆍ학계의 비평풍토속에서 상호교감의 수용과정을 거쳐 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비평풍토를 조성해 나가는 조화의 분위기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기분나쁜 비평에 대해 협박을 가하는 문화풍토나 시각과 관점에 따라 「적과 동지」로 구별해 버리는 단선ㆍ획일적 문화풍토에서는 문화의 다원화가 생겨날 수 있다.
비평과 토론의 풍토가 인신공격적ㆍ단선적ㆍ편향적 자세에서 벗어나 논리적이고 상호교감적이며 포용성을 띠어나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사회의 민주화 의식도 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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