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에 시달리는 음악 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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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동안 호평에만 길들여져 온 한국 음악인들이 최근 「90년대에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며 신랄한 비평을 서슴지 않는 음악 평론가나 음악계의 비리를 보도하는 음악 잡지에 대해 무분별하게 항의하는 사례가 꼬리를 물고 있다.
연주가 신통치 못했다거나 음악인으로서의 처신이 잘못됐다고 지적받은 당사자들은 「이제껏 모두들 덮어둬온 문제를 굳이 들춰내 망신스럽게 한다」는 식으로 항의하거나 원색적인 위협까지 하고 있다.
음악계의 불협화음은 올해 초 월간 음악 전문지 『음악저널』과 한국 음학 협회의 맞대결로 시작됐다.
음악 협회가 주최한 제21회 서울 음악제가 성의 없고 유치해서 학예회 같았다고 비평한 김규현씨 (작곡가)와 그 글이 실린 『음악저널』을 음악협회 측이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 법정 시비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으나 그 앙금이 가시지 않은 음악 협회는 소속 평론가들에게 이 잡지에 기고하지 말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모씨가 한 작곡가 단체가 주최한 공연에 대해 비판한 평론이 이 잡지에 실리자 이 단체는 그 책임을 물어 회장을 새로 뽑는 한편 그 평론이 실린 잡지와 관계된 소속 회원의 총무직 사퇴를 요구한 사례도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 테너 K씨의 독창회에 대해 「감정이 풍부한 반면 적절한 감정처리가 미숙하고 너무 과장되는…」식의 평론이 실리자 필자에게 『그따위 글을 쓰지 못하게 손가락을 ××버리겠다』는 식의 폭언 전화가 잇따라 걸려와 음악인들을 경악케 하고 있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솔직한 평」에 분개하는 당사자들이나 음대 교수 임용·개인 레슨 등에 대한 불편한 사정이 폭로된 관계자들의 반응은 놀랍도록 폭력적이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9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둘러싼 소문과 뒷얘기에 대한 보도와 관련한 반응도 그렇다.
한국 스포츠계의 거물 모씨가 이 콩쿠르 피아노부문에 참가한 딸을 위해 심사 위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린 일이 공개돼 한국출신 피아니스트 전원이 본선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는 내용이 『음악저널』 8월호에 보도됐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피아니스트 나카무라히로코씨가 일본의 『중앙공론』 9월호에 쓴 참관기에서도 이를 언급, 의혹을 짙게 하고 있는데 이 기사가 게재된 후 『음악저널』발행인 이남진씨는 여러 차례 협박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첫새벽이나 한밤중에 폭력적인 위협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 음악계는 최근까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모든 사건이 덮어져 왔고 평론의 경우도 대부분 「칭찬과 미사여구」로 일관되어 있어 제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음악 평론가 탁계석씨가 문예진흥원의 『문예연감』 자료를 위해 89년 한햇동안 6개 음악잡지에 실린 연주평을 집계·분석한 결과 36명이 4백22편의 연주평을 썼는데, 특히 K씨는 같은 날 열린 2∼3개의 연주회에 대한 평을 각각 다른 잡지에 쓴 것을 비롯해 전체의 28%가 넘는 1백19편의 천편일률적인 평론을 양산(?)했다.
이같은 풍토 때문에 서울 시립 교향 악단의 오보에 수석 성필관씨는 『AV저널』이란 잡지에서 『평론가들이 무턱대고 칭찬해줄 때도 아내는 정확한 눈으로 단점을 꼬집어 낸다』고 쓰고 진정한 평론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음악계의 잘잘못을 가리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어 잇따른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요즘 『올곧은 평론과 보도 풍토가 정착돼야 하고, 또 이에 불만이 있는 당사자들은 비공식적인 협박조의 항의나 반발 대신 지면을 통해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해명하는 성숙한 자세를 갖춰야한다』는 것이 뜻 있는 음악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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