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행위된 「상임위」/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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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대화가 한달이상 두절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라크사태를 다루는 국회상임위가 민자당만의 참석으로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 14일과 16일엔 건설ㆍ동자ㆍ외무통일위원회가,20일엔 노동위원회가 열려 이라크ㆍ쿠웨이트의 우리 근로자 철수대책을 논의했다.
이처럼 민자당만의 회의가 열린 것은 중동사태로 오일쇼크가 예상되고 우리 근로자들의 생사가 문제되는데도 『정치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여론이 따갑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하는 지각회의긴 하지만 국회가 국민의 안위와 경제문제와 직결된 사태를 두고 상임위든 본회의든 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열리고 있는 상임위원회들을 보노라면 과연 민자당의원들이 참으로 중동사태로 인한 기름값 걱정이며 우리 교민들의 안전등 국민들의 염려하는 바를 정책에 반영하고 정부의 비상대책에 대해 적절한 견제와 조언을 해주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동자위원회의 경우 이희일동자부장관은 16일 오전 민자당사에서 열린 민자당당무회의 발표자료를 그대로 재탕 보고했는가 하면 그나마 내용도 「전기료인상」 「유가인상 불가피」 「연탄값 인상시사」 등 정부방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건설위에선 『근로자 철수대책은 협의중이지만 밝힐 수 없다』는 20분간의 권영각장관 답변이 고작이었다.
국회상임위원회가 당정회의인지,정부방침추인을 위한 모양갖춰주기회의인지 혼돈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몇몇의원이 상식적인 수준의 질문을 몇번 던지고 장관이 대충 답변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촌보도 양보않고 국정논의를 거부하는 평민당도 문제지만 평민당에 여론의 화살이 돌아가게 하고 그들을 원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민자당도 상임위를 보다 진지하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후 2시에 열린 상임위가 해떨어지기도 전에 정부보고나 듣고 끝난다면 상임위를 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민자당이 최소한 「들러리 국회의원」 「행정보조 집권여당」이란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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