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상황 변한 것 없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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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중되는 어려움 현실인식 절실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과 해외여건의 변화,그리고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혹은 각 경제주체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한때 고개를 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과연 한때의 기우였는가 하는 의문에 부닥치게 된다.
온 국민사이에 팽배했던 위기의식을 희석시키고 낙관론에 더 많은 기대를 걸게 했던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상반기에 9.8%를 기록한 예상밖의 높은 성장실적이었다.
계속 곤두박질치리라 예상했던 경제가 의외의 높은 성장실적을 보임에 따라 정부나 국민이나 우리 경제가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안보감을 갖게 됐고 이같은 안이한 낙관론이 지난 여름 온 국민을 들뜨게 만들었던 무분별한 바캉스 행락과 무사안일,수수방관으로 일관한 정부의 정책대응을 유발한 원인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지금 우리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돌아보면 사태는 조금도 호전된 것이 없는 채 정부ㆍ국민 모두가 옷깃을 풀어헤치고 느긋하게 지난 여름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우선 수출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국제수지는 적자로 돌아선 채 다시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가는 계속 치솟아 7월말에 이미 7.8%를 기록했고 더욱이 장바구니 물가는 김치를 금치로 부르는 말이 상징하듯 이같은 정부 통계와는 무관하게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가계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물가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동사태의 발발에 따른 에너지값 상승과 인상요인을 억눌러온 각종 공공요금의 불가피한 현실화 요구로 내년 물가를 어디까지 끌어 올릴지 예측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기술력의 한계와 자금난ㆍ인력난으로 경쟁력 강화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이행은 커녕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가운데 내수부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중산층이 장기간의 증시침체와 대체투자대상을 발견 못해 엄청난 자산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새로운 이상기류의 하나다.
이처럼 국내사정이 과도기의 증상이라고는 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을 안고 있는 가운데 우루과이라운드의 출범에 따른 시장개방 압력의 가중,중동사태의 제3 석유파동으로의 발전 위기등 외부압력이 우리의 목줄을 죄어 오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나라의 어려움보다는 당리당략에 매달려 여와 야 어느 쪽이 더 나쁘달 것도 없는 추한 대결양상을 지속하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아예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거나 고작 조령모개식의 갈팡질팡하는 정책으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난 봄 총체적 난국이 운위될 때에 비해 한걸음도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중동사태,우루과이라운드의 출범 임박등 외부여건의 악화로 더 어려운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도 정부나 국민이나 이같은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안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 우리는 여름 바캉스의 해이해진 정신자세를 한시바삐 털어버리고 정치권도 정부도 국민도 눈앞의 도전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처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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