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통학열차가 멈추기도 전에 검정치마 여고생들이 뛰어내리면, 소년은 어깨 위에 참매를 앉히고 불개를 앞세우는 파수꾼입니다. 야, 작약꽃밭의 악동! 한 송이만, 국어선생 드릴 거야. 안돼, 누나는 안돼. 저번에 훔쳐 갔잖아. 오늘은 저기 저 예쁜 누나! 미리 꺾어둔 꽃다발을 슬며시 건네는 소년의 볼에도 붉은 작약꽃이 핍니다.
잠시 기차가 머무는 사이 작약꽃밭은 여고생 꽃도둑들과 어린 악동의 아라리난장입니다. 매일 바뀌는 주인공 누나와 작약꽃 한 다발이 날마다 통학열차를 달리게 했지요. 반야봉의 열두 살 적 별밭 이랑 사이로 가은발 점촌행 통학열차의 기적소리가 울리면, 나는 아직 어린 작약꽃밭의 악동이 되어 참매야, 검둥아, 누나야! 불러봅니다.
이원규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