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체 보험사들 '무사고 운전자 노 땡큐'

중앙일보

입력

올해 환갑인 윤모씨는 얼마전 자동차 상해보험을 갱신했다. 한달에 3만원씩을 더 내고 30세 이상 가족들이 윤씨의 차를 운전하다 사고가 나도 보장받을 수 있는 특약을 추가했다. 하지만 윤씨는 운전할 줄 모르는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장성한 자녀들은 윤씨의 차를 운전하는 일이 전혀 없다.

윤씨가 가족운전특약을 신청한 데는 보험사의 강요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보험사는 "장기 무사고 운전자는 보험 갱신이 안된다"며 특약 추가를 요구했다. 처음엔 다른 보험사를 알아보겠다고 큰소리쳤던 윤씨였지만 다른 보험사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윤씨는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가족운전특약이 포함된 조건으로 재계약했다.

서울에 사는 신모(33)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올해 10년째 무사고를 기록하고 있는 윤씨는 11월 초 보험 계약이 만료된다. 원래 가입돼 있던 보험사에 갱신을 요구했지만 역시 장기 무사고 운전자는 갱신이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보험사는 부부한정특약을 추가하라고 했다. 미혼인 신씨는 "장가 못 간 것도 서러운데 부부한정특약이 말이나 되냐"고 항변했지만 결국 다른 보험사 네 군데를 전전하다 그나마 보험료가 싼 한 보험사와 간신히 계약을 마쳤다.

최고 할인율을 보장받고 있는 장기 무사고 운전자들에 대한 보험사의 가입 회피가 여전하다. 소비자보호원과 금융감독원의 홈페이지에는 관련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보험사들은 7년 이상 장기 무사고 운전자들에 한해 자동차 보험료의 최고 60%를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 가입자들이 최고 100만원을 호가하는 보험료를 낼 때 장기 무사고 운전자들은 10만 ̄30만원대에 불과한 보험료를 납부한다.

하지만 장기 무사고 운전자라고 해서 사고를 피해갈 수는 없는 일. 보험사들은 "적은 보험료를 내는 고객이 큰 사고를 냈을 때에는 보험사에서 감수해야 할 부담이 크다"며 가입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보험사들의 방침에 피해를 보는 것은 고객뿐이다. 보험 가입자들은 "차라리 사고라도 한번 났으면 좋겠다", "무사고가 죄냐", "보험사에서 사고를 내라고 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1991년부터 운전을 시작해 16년간 무사고인 원모(40)씨는 "10년 넘게 사고 한번 없이 낸 보험료가 얼만데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 원씨도 최근 보험을 갱신하다 기존 보험사와 크게 다툰 후 다른 보험사로 옮겼다. 그는 "새로 옮긴 보험사도 높은 보험료를 요구했지만 기존 보험사가 너무 괘씸해서 다른 회사와 계약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사고 경력을 깨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사고를 위장하는 운전자들의 편법도 성행하고 있다.

신모씨는 "아는 사람 중에 자동차가 오래 돼 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사람이 있다"며 "경찰에 가서 누가 차를 긁고 달아났다고 신고한 뒤 보험사에서 도색 비용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이같은 방법은 운전자들 사이에 도색도 하고 보험료도 유지하는 묘안으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에서는 장기 무사고 운전자의 가입을 회피하기 위해 보험 설계사들의 수수료를 깎는다"며 "수수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보험설계사가 자연스레 가입을 회피하게 되는 것을 회사에서 이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도 보험가입자의 연령.차종.거주지역 등 사고위험도를 고려해 인수여부 및 인수조건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며 "갱신에 있어서도 의무적으로 인수하도록 상호협정을 시행하지만 이 역시 강제력은 없다"고 말했다.

또 "대형 보험사들은 가입 회피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대형 보험사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현대해상의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의 경우 장기 무사고 고객들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며 "무사고 운전자들이 대우받는 사회와 업계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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