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ㆍ북한 더이상 형제일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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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경제학자 바자노바 프라우다지에 논문발표/일방적 경원보다 실리따져야/한ㆍ중ㆍ일 관계 고려… 북한정책 재정립/양국경협 페레스트로이카 적용 필요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는 6일자 신문에서 『더이상 형과 동생의 관계일 수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소련­북한관계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장문의 논문을 게재,주목을 끌었다. 경제학자인 소련과학아카데미 후보 원사 바자노바여사의 이름으로 게재된 이 논문은 소련이 북한에 해방이후 막대한 원조를 했으나 이제는 원조의 성격이 바뀌어야할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소련­북한 관계변화는 한국ㆍ일본ㆍ중국과의 관계개선의 연속선상에서 이해,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기관지 프라우다가 북한­소련간의 변화를 한국ㆍ일본ㆍ중국과의 변화 연속선상에서 이해해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한소관계 정상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다음은 프라우다지에 기고된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북한에 있어 소련은 항상 가장 중요한 교역파트너였다. 종전직후 소련은 북한에 자동차에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90%이상의 물자를 공급했으며,지금도 북한전체 대외교역액의 50%이상을 소련이 차지하고 있다.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아연ㆍ카드뮴ㆍ마그네슘 등을 수입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에 수출하기로 되어있는 물품들을 제때 수출하지 않거나 서방국가에 달러로 판매 가능할 때는 소련에 앞서 서방측에 판매하는등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왔다.
북한은 경우에 따라서는 수출할 물건의 물량을 약속과는 달리 적게하거나 채무를 제때 상환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안갚는 등 무리한 행동을 취해왔다.
북한에는 소련의 도움으로 건설된 70개 이상의 산업플랜트가 있고 이들 플랜트에서 북한은 전체 국가생산의 25%,전력의 63%,석탄의 50%,철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이제는 왜 우리가 경제적인 이해를 따지지 않고 이같은 원조를 북한측에 제공해야 하는가 하는 「당연한 의문」을 제기할때다.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군사정치적 측면에서 그동안 소련은 서방측과 대립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소련의 이해가 첨예하게 관련된 지역으로 소련정부는 돈의 액수에 구애받지 않고 물자를 원조,북한을 도와왔다.
이 덕분에 북한은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남한과 비교해 경제는 크게 뒤처졌다. 비단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북한은 남한에 뒤떨어져 있다.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소련의 잘못도 많다. 북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명령위주의 행정체계다. 이것은 소련의 지시에 의해 소련의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련과 북한은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켜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결과 무조건 큰 공장을 지었으나 전력ㆍ원자재가 모자라 공장들은 가동되지 못한 채로 서 있다.
소련과 북한은 이제 잘못된 과거에 대해 값을 치르고 효과적으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이처럼 뒤떨어진 이유는 비단 명령적인 행정체계 때문만은 아니다. 소련의 원조가 중화학ㆍ건설 등 대규모 산업분야에만 치중한 것도 큰 잘못이다. 새로운 기술개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전체원조의 60%가 전기ㆍ철강분야에 집중되고 10%만이 기계공업,그리고 3%만이 경공업에 집중되었다.
북한의 명령체제는 북한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렸고 더욱 확산,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선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절대지도체제로 변했다.
이제 소련은 스스로도 이같은 과거의 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필자 생각으로는 두나라의 경제구조가 변혁돼야 한다. 다시 말해 페레스트로이카를 해야한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를 하고 있으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
소련이 아무리 도와주어도 페레스트로이카 없이는 북한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세계의 발전된 국가들과 경제접촉을 해야한다.
이제 소련과 북한관계는 형과 동생의 입장이 아닌 서로간 도움이 되는 대등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정부대 정부,협상과 명령에 의해서였으나 앞으로는 마치 회사대 회사의 관계와 같은 상호간 이익에 입각한 관계가 돼야한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북한으로선 상당한 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한다.
그러기위해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 회사차원의 조인트 벤처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에는 남한ㆍ일본ㆍ중국 등도 참여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이 아직까지도 낙후된 북한지역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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