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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메이드 인 케이블 드라마 지상파에 선전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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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상파 미니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 케이블을 위해, 케이블에 의해 만들어진 '메이드 인 케이블' 드라마다. 에로.공포물 같은 'B급 영화' 수준 정도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 윤다훈.김민종.배두나.김민준 등 스타 배우.탤런트가 줄줄이 나오고, 고화질(HD) 카메라로 찍은 화면은 예전과 비교해 '때깔'부터 다르다.

11일부터 방영되는 tvN의 '하이에나', 27일 뚜껑을 여는 CGV의 '프리즈', 11월 방영 예정인 OCN의 '썸데이', 연말 선보일 MBC 드라마넷의 '빌리진 날 봐요' 등 작품도 점차 늘고 있다. 케이블용 드라마에 사람과 돈이 모이고, 편 수도 느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전 작품들과 얼마나 달라지고 진보했을까.

◆케이블 드라마, 전성기 맞나?=케이블 자체 제작 드라마는 2004년 봉만대 감독의 '동상이몽' 이후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만 해도 공포물 '코마', 만화를 각색한 '시리즈 다세포소녀', SF 학원물 '에일리언 샘', 세 자매의 연애 행각을 다룬 '가족 연애사' 등이 방영됐다.

굳이 원조를 따지자면 1997년 현대방송에서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사랑하니까'다. 엄마의 영혼이 가족 주위를 떠돈다는 내용의 '사랑하니까'에는 이영애.배종옥 등 지금은 '모시기 힘든' 배우들이 포진했다. 그 후 케이블 드라마는 한동안 잠잠했다가 케이블 가입자가 1400만 세대에 이른 최근에 활기를 띠고 있다.

그 배경으론 CJ미디어와 온미디어 등 대형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콘텐트 강화를 위해 자체 제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우회 상장한 드라마 제작사들이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서 사전 제작으로 품질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도 이유다. 게다가 통상 방송사가 모든 판권을 소유하는 지상파 드라마와 달리, PP는 국내 방영권만 갖고 제작사가 해외 판권을 가질 수 있는 케이블 드라마는 제작사로서도 여러 모로 유리하다.

이뿐만 아니다. MBC 드라마넷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손잡고 로맨틱 코미디 '빌리진 날 봐요'를 제작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권을 쥐고 있는 SO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PP 모두 자체 콘텐트를 차세대 미디어에 위협받고 있는 '케이블의 돌파구'로 여기고 있는 증거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케이블 전용 드라마가 제철을 만난 듯한 양상이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46.5%에 달하는 종합오락 채널 tvN 윤석암 대표의 개국 인사말은 케이블의 의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이제껏 시도하지 않았던 내용과 방식으로 지상파가 찾지 못한 틈새 시장을 열어 보겠다"고 말했다.

◆B급에서 '웰메이드'로=먼저 포문을 연 것은 tvN이 개국 드라마로 마련한 '하이에나'다. 윤다훈.김민종.오만석이 출연해 남성판 '섹스 앤드 더 시티'를 표방하며 성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노골적인 성 묘사가 논란도 됐지만, '남자 셋 여자 셋' '세 친구'를 썼던 이성은 작가가 집필을 맡아 줄거리가 탄탄한 편이다. '골뱅이'(술 취한 여성), '거머리'(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남성) 등 드라마 속 대사까지 인터넷에서 화제다. 16부작에 모두 50억원을 쏟아부었다.

SBS 드라마 '연애시대'를 만들었던 옐로우 필름이 준비하고 있는 '썸데이'에는 김민준.배두나.이진욱.오윤아 등이 나와 4인4색의 사랑을 보여준다고 한다. 출판 만화 컷을 실사 화면과 접목시킨 예고편부터 예사롭지 않은 '썸데이'는 일본 나고야에서 현지 촬영까지 마쳤다. 16부작인 '썸데이'에도 45억원이 들어갔다. 저예산으로 이색 소재를 다뤄왔던 게 지금까지의 케이블 드라마와 영화였다면 이 두 드라마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예산만큼은 B급에서 A급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또 이서진.박한별.손태영 등이 주연을 맡은 CGV의 '프리즈'는 뱀파이어와의 사랑이라는 이색 소재를 담은 드라마다. 뮤직비디오.CF 감독 출신인 정재훈 감독이 사전 제작으로 만든 5부작이다. MBC드라마넷의 '빌리진 날 봐요'에는 가수 겸 탤런트 이지훈 외에는 신인급이 출연하지만, '순풍 산부인과'의 김의찬 작가 등이 참여하는 등 톡톡 튀는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진 않다. '장밋빛 인생'을 만든 KBS 김종창 PD는 "지상파와 외주 제작사로 양분되던 드라마 시장에 케이블이 등장해 시청자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편당 3억원의 제작비처럼 처음부터 물량 공세로 나가면 배우 몸값 등 드라마 전반의 제작비 상승을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위기를 느끼는 지상파를 대변한 목소리로 들리지만, 돈을 쏟아 붓는다고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법칙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장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경쟁만 벌이다 보면 간만에 맞은 케이블 드라마 전성기가 제대로 펼쳐지지도 못하고 사그라질 가능성도 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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