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자비로 고해 벗어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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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 세상은 불타고 있는 집처럼 편안하지 못하다. 중생은 어리석음의 암흑에 쌓여 노여움·불만·질투·편견 등 모든 번뇌로 미쳐있다. 아기에게 어머니가 필요하듯 모든 사람은 부처님의 자비에 매달려야 한다.』
불경의 『법화경』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너나없이 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늘 편안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영위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화택」으로 비유하기도 하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 명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늘 노심초사한다. 비록 그것이 정당한 노력 끝에 획득된 것이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새김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그것들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고 있는 여러 현상을 보면 별다른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늘 말하는 「대화」로 어려움을 풀어나가야 한다면서 언제나 대림과 편견이 앞서기 때문에 「파행」이 연속된다. 사회의 온갖 부조리 현상이나 문화의 편향 현상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인으로서 가슴 아픈 일로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매도하는 일도 그러한 예가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편안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가위「화택」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을 강 건너 불 보듯 바라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불타는 집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비심을 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와 명예, 권리를 질투하지 말고 노여워하지 말며 가진 사람들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자비심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사자는 죽어서 자기 몸뚱이가 여러 미물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아니라, 자기 몸 속에서 생긴 작은 벌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육신을 작은 벌레들의 먹이로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시적 자비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자비가 널리 행해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자꾸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화완」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종교는 그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법보 <강릉 보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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