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골 소극장 문 닫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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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여년 전통의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3년 전부터 이 극장을 임대해 대관 사업을 해온 연극협회 측은 "지난달 말 건물 소유주가 바뀐 뒤 임대료를 너무 높게 불러 극장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소극장 자리에는 호프집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밝혔다. 건물주가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이 극장은 올해 말 폐관하게 된다.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은 1986년 화가 박의순(65.양평 바탕골예술관 대표)씨가 개관했다. 낮엔 아동극을 올리고 밤엔 성인 대상 연극을 올리며 대학로 연극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지난 88년엔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킨 연극 '매춘'을 올리려다 경찰과 대치하는 해프닝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연극협회는 IMF 이후 소극장 연극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 6억원을 받아 이 극장을 임대, 공연 주최 측에 저렴하게 대관해왔다. 1일 대관료가 25만원으로, 다른 소극장의 반값 정도로 싼 편인데다 대학로의 중심지에 위치해 연극인들이 선호하는 극장이 됐다. 하지만 건물의 새 주인은 곧바로 증축 공사에 들어가는 한편 지하 1.2층에 자리잡은 연극협회 사무실과 바탕골 소극장 임대료를 기존 전세 6억원에서 전세 10억원에 월세 1천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현재 연극협회는 내년도 대관 신청을 받아 놓고도 아직 심의.선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연극협회 관계자는 "매달 대관 수입 5백만~6백만원으로 극장을 유지하는 것도 빠듯하다. 만약 한달에 1천만원의 월세를 내려면 대관료를 지금보다 세배는 올려야 한다. 그것은 당초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연극협회는 바탕골 소극장이 문을 닫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극장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연극인은 대학로의 문화 공간이 상업성에 밀려나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 공연 기획자는 "대학로에 상업적인 건물이 들어서면서 점점 돈 안 되는 소극장은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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