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향해 뛰는 '그들만의 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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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일 구미 동락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국내 최초의 남자 소프트볼 경기에서 대구팀 투수 김충엽이 소프트볼 특유의 폼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구미=조문규 기자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겼던 미국 여자 야구리그의 이야기였다.

한국판 '그들만의 리그'가 20일 경북 구미 동락공원 야구장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야구가 아니라 소프트볼이다. 소프트볼은 여자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제87회 경북 전국체전에서는 남자 소프트볼도 전시 종목으로 채택, 순수 동호인으로 구성된 7개 팀이 참가해 국내 처음 전국대회가 열린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다. 강원도 대표인 한림대 야구 동아리는 헬멧이 없어 상대인 대구 대표(대구시교육청 동호회)의 것을 빌려 썼다. 투수가 던진 공은 폭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고 실밥이 선명히 보일 만큼 느렸다. 풍차를 돌리듯 팔을 힘차게 회전하며 던지는 여자 엘리트 선수와는 딴판이었다. 난타전(?) 끝에 대구가 22-17로 이겼다. 7이닝 동안 22실점해 패전 투수가 된 박상근(23) 선수는 "공을 밑에서 던지니 전혀 컨트롤할 수 없었다. 구장도 좁아 야구보다 갑갑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광주-경북의 두 번째 경기는 전혀 딴판이었다. 야구 인기가 높은 광주시는 남자 소프트볼 클럽 수만 36개나 돼 2부로 나눠 팀을 운영하고 매년 6개 대회가 치러진다. 체전 대표팀엔 프로야구 KIA 2군에서 뛰던 주병선.최명환 등 엘리트 야구선수 출신도 3명이나 있다. 투수들의 구속은 시속 100㎞에 육박했고 홈런도 나왔다. 광주가 10-0, 5회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서원영 대한소프트볼협회 전무는 "남자 소프트볼은 지역별로 자생하다 보니 지역 간 기량 차가 크다"고 말했다.

남자 소프트볼은 국가대표도 없다. 1996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6경기에서 127실점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둔 뒤론 대표팀을 꾸리지 못했다. 소프트볼의 투구 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는 14m(야구는 18.44m)로 세계 정상급 투수가 뿌리는 시속 130㎞의 공은 야구의 160㎞에 해당한다. 한국 남자 선수 중에는 시속 100㎞를 던지는 투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최준재 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은 "한국의 여자 소프트볼 역사는 20년 가깝지만 남자는 오늘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의미를 새겼다.

구미=이충형 기자<adche@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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