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양 입북땐 공안정국 파동도/일지로 본 남북왕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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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간인으로는 48년 김구선생이 첫발/이후락ㆍ박성철 비밀방문뒤 7ㆍ4성명
북측의 범민족대회 실무대표 5명이 26일 서울을 방문하게 됨으로써 85년 12월 적십자 10차 본회담이후 5년만에 판문점을 통한 공식교류가 재개됐다.
범민족회의 예비회담은 48년 김구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방북한 이래 민간급 공식왕래로서는 처음이다.
남북한은 지난 72년 8월29일 평양에서 제1차 적십자 본회담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평양에서 모두 7차례,서울에서 9차례의 공식회담을 가졌으며 여기엔 6차례의 남북조절위원회 회의가 포함돼 있다.
개별적인 왕래로는 72년 5월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의 평양방문에 이어 북한의 박성철 제2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해 그해 7월4일의 7ㆍ4 남북 공동성명을 만들어낸 바 있다.
판문점을 통한 남북 공식왕래는 7ㆍ4 공동성명 발표직후인 72년 하반기와 73년 상반기에 걸쳐 13차례가 한꺼번에 이뤄졌다. 그후 85년에 가서야 남북 고향방문단 교환을 전후해 세차례의 적십자회담이 열렸을 뿐이어서 남북 왕래는 어쩌다 한번씩 해빙무드를 타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 공식왕래는 85년 12월이후 끊겼으나 비밀방문은 간간이 있어왔다. 88년 8월엔 서경원 평민당의원이 밀입북했었고 89년 1월엔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부허가를 받고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했었다.
89년 3월부터 7월까지는 작가 황석영씨,문익환목사,임수경양,문규현신부 등이 잇따라 비밀리에 방북해 공안정국 파동을 일으켰었다.
박철언 대통령정책보좌관은 임수경양의 평양축전 참가로 공안정국이 고조에 달했던 89년 7월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평축을 관람한 것이 공개된 비밀로 인정되고 있으나 정부측은 이를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다.<조현욱기자>
□남북한 왕래일지
▲72.5.2=이후락 중앙정보부장 평양방문
▲〃5.29=북한 박성철 제2부총리 서울방문
▲〃8.29∼9.2=남북 적십자 1차 본회담(평양ㆍ한적대표 이범석,북적단장 김태희)
▲〃9.12∼16=〃2차 본회담(서울)
▲〃10.22∼26=〃3차 본회담(평양)
▲〃11.2∼4=남북 조절위원회 2차 공동위원장회의(평양ㆍ서울측 공동위원장 이후락,평양측 공동위원장 대리 박성철)
▲〃11.22=적십자 4차 본회담(서울)
▲〃11.30∼12.2=조절위 3차 공동위원장회의및 1차 본회의(서울)
▲〃12.1=박정희대통령,조절위 북측대표접견
▲73.3.14∼16=조절위 2차 본회의(평양)
▲〃3.20∼23=적십자 5차 본회담(평양)
▲〃5.8∼=〃6차 본회담(서울)
▲〃6.12∼14=조절위 3차 본회의(서울)
▲〃7.10∼13=적십자 7차 본회담(평양)
▲85.5.27∼30=적십자 8차 본회담(서울)
▲〃8.26∼29=〃9차 본회담(평양)
▲〃9.20∼23=분단 40년만에 남북 고향방문단및 예술공연단 동시교환 방문
▲〃12.2∼5=적십자 10차 본회담(서울)
▲88.8.18∼20=서경원 평민당의원 밀입북
▲89.1.23∼2.1=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평양방문,금강산개발협의
▲〃3.20∼4.24=작가 황석영씨 방북
▲〃3.25∼4.13=문익환목사 평양방문,김일성 면담
▲〃6.30∼8.15=임수경양 평축참가
▲〃7.26∼8.15=문규현신부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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