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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 영아사건' 수사팀 상 받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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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보던 프랑스 수사당국과 언론의 반성을 끌어내며,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을 증명한 서래마을 영아(갓난아기) 유기사건 수사팀이 표창을 받는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서울방배경찰서 김갑식 수사과장은 '제61회 경찰의 날(10월21일)' 하루 전인 20일 대통령 표창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 법의학과(단체)는 11월 3일 '제2회 과학수사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수상 소식에 "쑥스럽다" "함께 고생한 부원들 몫"이라며 겸손해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방배경찰서 강력3팀 형사들은 지난 세 달이 "실타래를 푸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7월 23일 서울 서래마을 냉동고에서 두 명의 영아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을 찾은 형사들은 담배를 피우며 벌벌 떨고 있는 프랑스인과 만났다. 집 주인 장 루이 쿠르조(40). 신고자이기도 한 그의 DNA 샘플을 확보한 수사팀은 처음에는 "쉽게 풀릴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은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국과수로 보낸 DNA 검사 결과 쿠르조씨가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나왔다. 김갑식 수사과장은 수사팀에 "사건의 핵심은 어머니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용의선상에 올린 사람은 3명. 가정부였던 필리핀인 L씨, 옆집 주민이 목격했다는 백인 소녀, 그리고 쿠르조씨와 외도를 했을지도 모를 제3의 한국인 여성. 이때부터 힘겨운 탐문수사가 시작됐다. 서울 한남동에 살고 있는 가정부 L씨를 만나기 위해 비를 맞으며 밤새 잠복했다. 이틀, 사흘씩 집에 못 들어 가는 날도 많았다.

자칫 미궁에 빠질 조짐을 보이던 수사는 "베로니크가 서울에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는 첩보를 확보하면서 급진전됐다. 수사팀은 서울 시내 대학병원과 산부인과 300여 곳을 뒤졌다. 사당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베로니크라는 이름을 찾았을 때 환호성을 질렀지만 생년월일이 다른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 그때 김 과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119 응급출동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 것. 그 결과 베로니크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급성패혈증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남편 쿠르조씨의 사생활에 대한 탐문 수사결과도 "외도 가능성이 낮다"는 쪽으로 나왔다. 천현길(32) 팀장은 베로니크가 엄마일 가능성을 의심했다. 간호장교 출신인 천 팀장의 아내도 힌트를 줬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자궁에 문제가 생겨서 병에 걸린 게 아닐까'라고 하더군요." 바로 김 과장에게 달려갔다. "과장님,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베로니크가 엄마 아닐까요?"

수사팀은 곧장 서래마을의 사건 현장을 찾았다. DNA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베로니크의 세포 한 점이라도 찾아야 했다. "세포가 있을 것 같은 생활용품 리스트를 만들어서 귀이개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신현동(55) 형사는 팀원 전원이 하나의 증거라도 찾으려고 2층짜리 빌라를 조심스레 뒤졌던 당시를 회상했다.

수사팀과 함께 밤낮을 고생한 이들은 국과수 법의학부 팀원들. 사건 초기, 법의학과에선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통에 불이 났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법의학과에선 냉동고에서 부패된 채 꽁꽁 언 사체는 서양아이이고, 불규칙하게 잘린 탯줄로 보아 엄마가 범인이라는 사실, 폐에 공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태어난 후에 살해됐다는 점, 몸무게가 7㎏이 넘는 걸로 봐서 쌍둥이가 아닌 형제라는 사실을 하나씩 밝혀냈다. '영아살해'로 결론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결정적인 증거는 유전자분석과의 DNA 검사결과였다. 영아 내부의 장기(臟器)에서 적출한 DNA와 수사팀에서 넘어온 칫솔과 귀이개 등에서 채취한 DNA 분석을 통해 부모가 쿠르조씨 부부임을 밝혀낸 것.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 법의학과는 1947년부터 무려 6만 건에 달하는 부검을 통해 200만 쪽에 달하는 감정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다. 이 노하우 덕분에 작년 태국 쓰나미(지진해일) 때도 39개국 중 가장 빨리 사체 신원확인을 해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낙은 법의학과장은 "프랑스로 DNA샘플이 넘어갈 때도 나중에 재검(再檢)할 경우를 대비해 절반을 남겨놓았을 정도로 100% 확신했지만, 나중에 그들이 '한국수사팀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언론에 나오자 당혹했다"고 말했다. 결국 10월 10일 프랑스 사법당국은 "쿠르조 부부 DNA와 영아 DNA 비교 결과 친자가 맞다"며 한국의 수사결과를 공식 인정했다.

정 과장은 "사건만 생기면 반짝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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